영감의 순간



나는 1970년 대 강원도 춘천의 <박 의원>이라는 병원(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고 오래지 않아 가게는 문을 닫았다고 한다.

 

나를 임신했을 때에 엄마의 몸무게는 사상 최고를 갱신하였다. 박 의원에서는 쌍둥이일 수도 있으니 엑스레이를 찍어보자는 조언을 하였다. 내가 태어났을 때엔 4.4kg이었는데 박 의원에서 출산한 아이들 중 가장 무거운 아기였으며 낳자 마자 머리털이 다 나있어서 돌이 지난 아이처럼 보였다.

 

내가 태어났을 때에 어머니는 만 서른 살이셨고, 아버지는 만 서른 여덟이셨다. 엄마가 진통을 시작한 건 새벽이었다. 아버지는 분만실 앞에서긴장의 담배 한 대를 태웠는데, 당시 한 갑에 하나씩만 들어있던 귀한  한 가치를 의사가 주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1912년 한일합방 직후에 태어나신 전라도 출신의 유명한 짠순이로, 할머니 말에 의하면, 아들을 낳았다는 아버지의 전화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오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 택시비가 500원이었고 짜장면 한 그릇 가격이라고 회상하셨다.

 

할머니는 나같은 손자를 보려고 품성도 걸음걸이도 손금도 소처럼 우직한 엄마를 며느리로 들이셨다고 회상했다. 나도 이렇게 무겁고 머리숫 많은 아이로 태어나버린 이상, 죽기 전에 많은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심었으면 좋겠다.

 

어머니가 나를 낳으신 지 만 삼십 일 년이 된 해 여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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