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순간





내가 자라고 태어난 소도시엔 화방이 3개가 있었다. 그 중 예화방은 내가 태어난지 몇년 안 되어 시작한 가게이다. (그 가게로 우리 삼남매의 유년기는 유복할 수 있었다.)

 

집에는 늘 누나 둘에 할머니도 있었지만 어린 시절엔 괜히 심심하고 엄마가 보고 싶지 않은가. 집에서 가게까지는 걸어서 한참 걸어야 했던 거리인데 나는 곧잘 혼자 가게까지 걸어가서 앉아 놀다 오곤 했다.

 

하루는 엄마가 외출한다고 해서 나는 가게 안쪽 소파에 앉아 TV(가게를 보는 게 아니라 TV) 보고 있었다. 딱히 할 게 없어서 IQ점프 같은 걸 보기도 하고, 여성중앙 같은 잡지를 뒤적거리기도 했다. 4학년 짜리가 할 게 뭐가 있었겠냐 마는. 기껏해야 의자를 딛고 올라가 "엄마 키가 이만하면 170이 넘어?" 정도를 물어보며 노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때 교복을 입은 여고생 누나가 와서는 아주머니는 없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엄마가 잠깐 어디 나갔다고 하곤 또 나는 멍하니 TV를 봤다.

 

그 누나는 가게 게 안을 계속 서성댔나 보다. 엄마가 돌아와서는 돈 통에서 돈이 없어졌다며 난리가 나셨다. 나는 어떤 여고생 누나만 다녀갔다고 말했고, 엄마는 그렇게 들어가 있으면 어떡하냐고 나무라듯이 말씀하셨다.

 

"그 학생이 돈을 가져간 거 아니겠니!"

 

나는 마치 코를 파지 말라는 잔소리처럼 가볍게 흘려 들었고 엄마도 '니가 뭘 알겠니'라고 생각하셨는지 나를 크게 혼내지는 않았다. 가게에서 돈을 가져갔는데 코 파지 말라는 수준으로 들었다니. 지금 생각엔 참 바보스럽기도 하고 순수하기도 하다.

 

그때 내게는 무엇이 중요했을까. 나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그렇다면 20년 후의 나는 이 글을 보며 그때 내겐 무엇이 중요했을까’, ‘나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라고 묻겠지.

 

지금 이 순간을 묻는 20년 후의 내가 글을 쓴다면, 40년 후의 내가 20년 후의 내게 그러겠지.

 

'그래 내가 쉰 초반이었는데 뭘 알았겠나...'

세월은 한 순간, 그래서 더 기록하고 더 아름답고 더 사랑해야겠다.





2010년 8월 7일 만 서른의 내가. 해저물 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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