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순간



국민학교 6학년 때에 난 걱정이란 걸 모르고 살았다.

 

당시에 또래 사이에서는 자전거 브랜드가 주요 관심하였는데 아마 기어 달린 자전거가 5, 10단을 넘어 18, 21단으로 넘어가던 시기였던 것 같다. 내 자전거는 당시 Typhoon이라는 Lespo(삼천리) 브랜드였는데 10단을 사서 나중에 15단으로 개조했다. 최소 앞 기아가 3개는 되어야(최초 15, 18, 21, 24) 우리의 클럽에 낄 수 있었다. 나는 동네에서 가장 친했던 태영이와 유현이 그리고 몇몇 형들과 함께 춘천 외곽 지역이며 먼 곳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오곤 했다. 아마 하루에 2-3시간은 자전거를 탔던 것같다. 앞바퀴 들고 누가 더 오래 달리나, 멋지게 먼지를 일으키며 흙길에서 미끄러지듯이 서기, 뒷바퀴를 통통 누가 더 튕겨올리나 등 우리는 단순히 자전거를 타는 경지를 넘어 즐기고 부리는 경지까지 나아갔으니까.

 

5학년 때에 전학 온 나는 6학년 때엔 반장이 되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서울이라면 내가 반장이 못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방이기 때문에 나는 부모님이 신경 안 쓰고 꼭 공부를 잘 하지 않아도 되는 반장자리를 꾀어 찰 수 있었다.

 

반장임에도 나는 사고 뭉치 쪽에 속했다. 선생님의 캐비넷에서 시험 전날 답안지를 유출한 적도 있다. (그러나 캐비넷 옆에 비밀번호를 적어놓은 그 선생님도 참). 그리고 완벽 범죄를 위해 일부러 많이 틀려주는 센스까지 발휘했다.

 

건물 3층의 나무복도 중앙엔 교장/교감선생님께 쓰는 건의함이 하나 있었다. 1990-91년인데도 건의함이 있었던 것은 꽤나 재밌고 신기한 발상이지만, 아마도 건의라는 말도 이해하지 못했을 국민학생들에게 그 통은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나와 친구는 그 건의함에 장난을 치기로 했다. "우리 저기다가 재밌는 거 써서 넣자. 우리가 누군지 아무도 모를꺼야."

 

결국 종이위에 휘갈긴 copy "교감선생님 대머리"였다. 그런데 문제는 교감 선생님이 정말 반짝이는 대머리였다는 것이다.

 

우리의 작전대로라면 그 건의함을 열어본 대머리 교감선생님은 매우 화가 났을 것이고, 아침 조회시간에 선생님들에게 화풀이를 했을 것이다. 선생님들은 회의가 끝난 후 '이놈이 누군지 잡지 않으면 우리가 더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라며 각자의 반에서 작성한 블랙리스트를 제출했을 것이다. 불행히도 나는 6학년 중에도, 옆 학교와 패싸움을 주동하는 등 말썽을 잘 부리는 놈에 속해서 선생님 눈에는 반장임에도 참 눈엣가시였다. 그러나 그것은 원칙대로라면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무기명이었으니까.

 

그런데 아뿔싸.

 

나는 그 중대한 범죄를 어느 한 놈에게 발설해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학교가 파한 뒤 빈 교실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걸 좋아했는데, 누가 본다면 도둑놈으로 의심하기 딱 좋았다. 그 범죄(?)를 저지른 날도 나는 빈 교실을 어슬렁거렸고 누군가에게 발각되었는데, 그 짜식은 나를 매우 수상하게 여기는 눈빛을 보냈다. 당시 잘 나가고 성깔도 있는 6학년 반장이었지만, 나는 그 친구에게 "재밌는 얘기 해줄까"라며 그날의 범죄(?)에 대한 보안을 풀어버린 것이다. 아마 '난 그 장난을 위해 지금 돌아다닌 것이고, 네가 날 괜히 찝찝하게 쳐다보는데, 그런 건 아니다'라는 걸 말하기 위해서였겠지.

 

선생님들 사이에선 나름 비상이 걸렸다. 건의함은 원래 텅텅 비기 마련인데 아니, 어느 놈이 감히 교감 선생님에게 대머리라고, 그렇게 사실적이고 부정할 수 없지만 입 밖에 내서는 안 될 글을 남긴단 말인가. 그 놈은 싹수를 잘라버려야 할 것이다!

 

그 입 싼 놈은 결국 바퀴벌레들이 소굴에서 약 나눠먹듯이 순식간에 내 얘기를 퍼뜨렸고, 나는 결국 선생님에게 잡히고 말았다.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선생님은 내 고추를 잡아서 조롱하더니 나중엔 뺨을 세게 몇 대 때려 내 눈에선 눈물이 찔끔 났다.

 

선생님이 나를 때리면서 한 말은 ; 니가 도둑놈이야 왜 남의 반엔 돌아다녀! (!)

 

하지만, 이상태 선생님, 이렇게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교감을 대머리라고 쓰면 어떡해 장난을 그렇게 치면 못 써! ㅋㅋㅋ 하지만 너 아이디어 정말 좋구나!

 

후일 어린 아이의 장난에 너무 진지해지지 말기로 다짐한다. 어린 아이를 어른으로 만드는 건 시간이 알아서 하지만, 어린 아이 다울 수 있게 하는 건, 그래서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주는 건 어른들의 몫이니까.

 

-범죄 후 20년이 흘러버린 입추 날. 8 7

 

그런데 춘천에 사는 태영이에게 전화를 해서, 그때 일에 대해 물어보니 태영이는 모른다고 한다. 시험지를 유출하여 나눠본 것은 기억나지만 대머리 사건은 자기가 아니란다. 누구였지 공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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