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덥지근한 지금 날씨와 잘 어울리는 아주 재미있는 기억이 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당시 나는 꽃가루 炳을 앓았다. 그런데 이 병은 피부에 생기는 질환으로
아주 죽을 병은 아니었던 듯하다. 머리가 가렵고 뭔가 보기에 좋지 않았던 정도였던 것 같다.
자세한 건 기억이 안 나지만 나는 두피에 꽃가루 병 진단을 받고 바로 삭발식을 치렀고, 머리에
보랏빛 감도는 약도 발랐다.
아버지는 바로 내게 흰색 모시옷을 사 입히셨다. 그 모시옷이라 함은 전후 한국 영화에나 나오는 (뽕 시리즈에 많이 나오더라, 모시옷) 흰색 모시로 된 속이 훤히 비추는, 쉽게 상상가는 그 옷이 맞다. 10살 정도 된 통통한 어린 아이가 삭발을 하고, 보랏빛 약도 머리에
군데군데 바른 채, 속이 훤히 비추는 모시옷을 입고 있다고 상상해보면 참 재밌다. 화룡점정에 금상첨화, 옥상가옥이라,
그런데 아버지는 내게 뭔가 더 어울릴 만한 그것을 사 신키셨다. 흰색 고무신이다.
이렇게 완벽한 스타일을 갖춘 나는 당분간 동네에 나가지 않았고, 곧 잘 했던 밭두렁 한 바퀴
돌기 계주에도 선수로 참가하지 않았다. 모시옷은 몇 번 입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시절 사진이 남아있는지, 춘천댐에서 과수원하고 있는 이모네에서
가져온 앨범을 먼지 털고 찾아봐야겠다.
이렇게 더운 날에 꽃가루 병이라도 걸렸으면 좋겠다. 그러면 삭발한 머리에 대고, 회사에 불만있냐,는 말씀은 못 하겠지.
2010년 6월 27일, 장마비라 해놓고 찔끔찔끔 비 몇 방울 온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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