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순간



<별난>이라는 말 뒤에 어떤 단어가 붙었는지는 정확히 기억할 수 없다. (다음에 춘천에 가게 되면 꼭 확인하고 인증샷도 찍어야겠다).

 

별난 분식/ 별난 떡볶이/ 별난 문방구.. 이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역사적 진실은 이렇다.

 

초등학교 5학년이 끝나갈 무렵 학교 앞에 4-5개의 문방구 중 한군데가 리뉴얼을 했다. 사실은 주인이 바뀌었다. 당시 촌스럽고 왠지 사기꾼 같아 보이던 아저씨들(죄송합니다) 대신에 젊은 신혼부부가 주인이 되었다. 피부가 하얀 아주머니와 인상 좋게 생긴 젊은 아저씨였고, 아이는 없었다.

 

그들 부부는 간판도 걸지 않은 채 장사를 시작했고 문방구에선 떡볶이와 분식도 팔고 문구류도 팔고, 기타 불량 식품도 팔았다. 창고처럼 생긴 곳에는 그 때엔 진귀했던 자전거 안장에 나사가 달린 고급 자전거도 있었다. 당시엔 삼천리 자전거와 코렉스 자전거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었고, 우리들 사이에서는 자전거 서브 브랜드 네임 (나의 것은 삼천리 자전거 레스포의 태풍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소나타 급 모델로써, 고급은 아니었다)이 그 아이의 포지션을 좌우할 정도였고, 그런 자전거 중에도 안장을 몽키스패너가 아닌 손으로 조였다 풀었다 하는 안장 나사는 매우 고급이었다.

 

내가 먼저 제안했는지 아저씨가 먼저 제안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떡볶이를 먹다가 이름을 공모하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나는 그 즉시 집으로 달려가 몇 시간 만에 네이밍과 디자인까지 하여 공모를 하였다.

 

그 분들은 의정부에서 오셨는데 촌놈인 내게는 의정부가 서울처럼 큰 도시로 느껴졌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여러 공모작들이 문구점의 통유리에 전면 배치되었고 내 출품작이 당선되었다. 상품으로 떡볶이를 좀 얻어먹었다.

 

지금도 이름이 왜 이럴까에 대한 궁금함을 마음에 간직한 채 가게를 운영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가게를 인수한 주인과 떡볶이를 먹는 초등학생 고객들에게 바친다. 그 이름은 내가 만든 거야.


춘천의



0


2010년 5월 16일

'출판 원고 > 육림공원 원숭이 (1995)' 카테고리의 다른 글

쑥쓰러웠던 1985년, 포카리스웨트와 벌  (0) 2010.07.24
꽃가루 病과 삭발  (0) 2010.06.27
배우 고두심  (0) 2010.05.16
롤러 스케이트  (0) 2010.05.16
이젤  (0) 2010.04.24
홍익대학교  (0) 2010.04.24
강원도 인제의 옥반지  (0) 2010.04.17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