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순간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다가, 시간이 지나면 모든 대상에 호기심을 갖고 작은 일에도 꺄르르 웃는 순수한 어린이가 된다. 사춘기를 지나 공부에 빠져야만 하는 시기가 지나면 금새 스무 살이 되고, 이때부터는 갖가지 독립과 시행착오 아래에서 첫 사랑도 겪는다. 사회적인 불만사항이 생기다 보면 어느새 어른이 되고 생활을 위해 자신을 틀에 구겨 넣어가며 취업을 하게 된다. 그 사이 결혼을 하고 어느새 생업과 모기지론에 주름살을 구기다 보면 모든 대상에 대한 호기심은 없어져 재테크에 대한 스트레스로 바뀌고, 작은 일에도 웃음이 가득하던 마음은 웬만하면 웃지 않아 어느 순간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랄 굳은 인상으로 바뀌어 간다.

 

나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인해 '나이듦' '죽음'에 대해 또래들보다 조금 더 눈을 일찍 떴다고 생각하는데, 우선 이 나이듦에 대한 혜안은 내가 키우고 사랑했던 몇몇 개 놈들과의 추억에서부터다.

 

첫 멍멍이이자 자랑할 게 많은 진돌이는, 아버지 번개가 순수 혈통 진돗개이며 전국 투견대회에서 1등을 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놈이었다. 그리고 우리 진돌이는 그 번개의 장남이었다. 진돌이는 동네 개들만 보면 본성을 누르지 못해 달려가서는 기어이 병신을 만들어놓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결국 개훈련소로 넘겨졌다. 두번째 개는 빠삐라는 역시 혈통있는 달마시안, 셋째 개는 캐리라는 얍삽한 다 큰 숫놈이었다. 이후로도 로트바일러, 찡 등 몇 종이 더 있다.

 

새끼 강아지를 키우다 보면 덮은 이불 속에서 발가락만 움직여도 두어 시간은 족히 그 놈을 뛰어다니게 만들 수 있다. 아주 작은 소리로도 그 놈은 쉽게 신이 나서 온 집안을 이어달리기 하듯 뛰어 다니고 넘어진다. 쉭쉭 소리를 내며 귀와 코를 톡톡 쳐주기만 해도 미친 듯이 웃으며 장난을 받을 줄 아는 것이다.

 

이런 일은 개가 6-12개월을 거치면서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불 속에서 발가락이 움직여도 큰 감흥을 느끼지 않기 시작하고, 때론 주인이 한심해 보인다는 듯 한숨까지 쉰다. 인상도 반항적이거나 무료하게 바뀐다 (그것이 개라 하더라도 표정과 인상은 있는 법). 주인이 놀고자 하여도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에 가서 잠을 자기 시작한다. 그에겐 모든 것이 익숙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셋째 개인 캐리는 처음 우리 집에 온 이틀간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 처음으로 작은 강아지 (푸들)였거니와 털이 하얀 것이 꽤 귀여웠고, 깡충깡충 점프를 하며 애교를 부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개는 우리 집에 올 때에 이미 어른이었기 때문에, 이미 위의 과정들을 다 겪은 어른 개였다. 처음 이틀은 우리에게 예쁨을 받기 위해서였는지 최선을 다 했으나, 삼일 째부터 무섭게 변하기 시작했다. 주인을 무시하는 것은 기본, 무심함이 너무 심하여 그렇게도 권태로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 개들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사람이다.

 

시니컬, 권태로움, 무심함, 썩소, 무신경함, 뻗뻗함. 태어난지 1년이 안 된 개도 하지 않는 일들은 이 삼십대 사람이 하고 있으니까. 사람 나이 삼십대라고 해봤자 개 나이로 치면 2-3년 차밖에 안 된다. 가끔은 농담을 해도 웃지 않는 사람들, 얼굴은 서른 전후인데 오십대의 권태로운 부동산 아저씨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본다. 더 어른스럽고 더 권태스러워 보여야 진중하다고 생각해서일까. 아치형 입으로 볼을 튀어나오게 만들어 놓고는 눈에서 생기와 초점을 찾아볼 수 없는 이 사람들을 보면 나는 이십여년 전 그 개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변하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장난에 놀아나지 않는 개들을 보고 속 상해할 필요 없다.

 

그저 거울을 보고 나는 몇 살짜리 개인가, 하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그리고 몇 살짜리 개가 되었으면 하는지 뒤돌아 가며 생각해보면 그만이다.

 

난 발가락만 움직여도, 조금만 장난을 쳐도 마구 뛰어다니는 어린 개로 오랫동안 살아가고 싶다.

 

-2010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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