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줌을 늦게 까지 못 가렸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오줌을 가린 건 중학교를 올라가면서
부터이다.
오줌을 못 가렸다는 말은, 대부분, 빠짐 없이 - 주 5일 이상은 이부자리에서 소변을 그냥 싸버렸다는 말이다. 그럼 그때마다 어떻게 했냐면 나를 쪽쪽 빨아먹고 살 정도로 손자를 예뻐했던 할머니가 직접 면 귀저기를 매일
빨아가며 갈아 입혔다는 말이다. 그래서 자기 전에는 할머니가 기저귀를 항상 채워줬고, 흰 면 기저귀에 고무줄을 허리띠처럼 차고 잤다. 중간에 오줌을 싼
것도 대부분 내가 아닌 할머니가 알아차렸는데 일어나서 귀저귀를 벗기고는 다시 잠들었다. 때론 수박으로
인해 양이 많아서 이불을 홀랑 다 적신 일도 잦았다. 그런데 할머니는 내가 그렇게 오줌을 싸고 또 그런
나를 수발하는 게 좋으셨던 게 아닐까. 나는 할머니가 아니었으면 반 병신처럼 살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국민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때에,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아버지의 결단으로 인해 (내 추측이다. 그 전까지는 큰 조치가 없었는데ㅡ 그런 결심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갑자기..)
나는 피아노 학원집으로 소금을 얻으러 갔다. 그 날은 평일 아침이었는데, 사실 난 소금을 왜 얻으러 가는 줄도 몰랐다.
머리엔 키를 쓰고ㅡ, 가서 소금을 얻어오라는 것이다.
나는 그게 잘못해서 인줄도 몰랐고, 정말 소금이 없어서인가-싶기도
했다. 그런데 피아노 학원집 할머니는 동네에서 인상이 무서운 할머니였고 내게 뭐라고 막 혼을 내며 소금을
주셨다. 어른들만의 사인이 잘 맞아떨어졌던 것같다.
그렇게 챙피를 주면 내가 오줌을 가릴 거라 생각하셨겠지만, 내 성격은 그런다고 해서 크게 자존심이
자극 받는 성격도 아니었다. 게다가 난 그렇게 혼나고 소금을 얻어온 게 오줌을 싸서 그런 건지도 한참
후에야 이해했다.
그래서 나는 한참을 더 그렇게 기저귀를 차고 잠을 잤고, 1박 2일로 놀러가는 날엔 긴장해서 가끔 오줌을 안 싸기도 했다.
자랑스럽게도 난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오줌을 가리게 되었다. 솔직히 요즘도 가끔, 오줌을 더 이상 싸지 않는 내 자신이 너무도 자랑스럽다.
2010년 8월 29일
'출판 원고 > 육림공원 원숭이 (1995)'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수저 (0) | 2010.09.24 |
---|---|
1985년 중앙시장의 한복집 (0) | 2010.09.11 |
택시인지 아닌지 (0) | 2010.09.11 |
육림공원 원숭이 (0) | 2010.08.21 |
1970년대 박 의원 (0) | 2010.08.21 |
보리밥과 곱창 (0) | 2010.08.21 |
세월이란 한 순간 - 예화방 절도사건 (0) | 2010.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