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무척이나 무서운 분이셨는데 여기에 대한 일화 세 가지만 말하려 한다.
#1.
내가 사춘기가 되기까지 자란 동네는 주변에서 가장 높은 집이 3층짜리였으며 등하교 길에는 밭이나 공터가 많던 개발 전의 소도시의 모습 그대로였다. 동네에는 차가 거의 다니지 않았다. 나는 주로 동네 형들과 어울렸는데 하는 일이라곤 땅따먹기, 축구, 계주 혹은 괜히 몰려다니며 신기한 일을 도모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우리에겐 콜트45구경이라고 하는 장난감 총이 생겼는데 그 당시 처음 선을 보인 BB탄을 쏘면 정말로 따끔하니 아팠다.
어느날인가 형들 몇이서 나를 골탕먹인다고 신발을 숨겼다. 아마 숨바꼭질 내지는 그 비슷한 놀이였던 것같다. 내가 조금만 더 조르고 안달이 났으면 형들은 금새 신발을 내주었겠지만 나는 그런 성격이 되지 못하는지 바로 울면서 집으로 갔다.
우리 동네엔 작은 놀이터, 큰 놀이터라고 부르는 곳이 있었는데 할머니는 나를 언덕 너머 큰 놀이터까지 손을 잡고 올라갔다. 형들은 울면서 집에 간 나를 보면서 무척이나 당황스러워 했는데, 내가 할머니의 손을 잡고 큰 놀이터에 나타났을 때엔 형들은 내 신발을 손에 쥐고 멍하니 서 있었다.
할머니는 형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손에서 내 신발을 낚아챘고, 그 신발로 형들의 뺨을 그대로 후려 갈겼다.
그 후로 누구도 나를 괴롭히지 못하였더라...
#2.
할머니는 "쪽쪽 빨아먹었다"는 주변 말처럼 나를 사랑하셨는데 내가 밥을 먹을 때면 손수 구운 김을 잘게 잘라서 그 위에 밥을 반숟가락 정도 올린다음 간장을 살짝 얹고 손으로 꽉꽉 주물러서 미니 김밥을 만들어 내 밥그릇 옆에 줄을 세워놓으실 정도였다. 누나들이 그것을 먹을라치면 손등을 찰싹 때렸다고 한다.
어느날 밤엔가 무엇 때문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누나 둘을 내복 차림으로 쫓아낸 적이 있는데, 할머니는 누나 둘을 현관 문 밖으로 내쫓은 다음 날 껴안으며 웃던 기억이 난다.
#3.
할머니는 교회에서 여호와 하느님을 설교하러 집을 방문하면 매섭게 쳐내셨다. 그런데 젊은 여자 두 명이 끝까지 들어와서는 나와 누나들에게 설법(?)을 강행했다. 그리고 나가면서 "너희 할머니 진짜 호랑이 할머니다-"하셨도다...
2010년 9월 25일, 집필 책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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