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출장을 앞두고 지저분한 머리를 정리하러 미장원에 갔다. 기다리는 중에 가려운 귀를 후벼대던
중 나는 재미있고 소중한 기억을 생각해 내었다.
열 살이 되기 전까지, 머리를 자르러 갈 때엔 주로 아빠나 할머니였다.
#1. 엄마와 (한 1985년 쯤 되었을까)
엄마는 춘천 요선동에서 화방을 했다. 그 앞엔 한아름 빵집이라는 빵집이 있었고 오래 동안 자식이
없는 젊은 부부가 운영했다. 내가 좋아하는 빵은 글러브 모양에 안에는 달콤한 살색 크림이 들어가 있는
빵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손가락 빵이라고 이름 지어 불렀다. 종종
빵집 사장님은 내게 자기 아들로 입양오라고 말했는데 난 그게 싫었다. 내가 왜 모르는 사람의 집에 가서
살아야 하나- 게다가 엄마나 아빠는 그래라, 가서 살아라, 라고...
그 옆엔 삼화식품이라는 모퉁이 수퍼가 있었는데 바로 앞이 인성병원이라는 춘천에서는 꽤 큰 병원이 있어서 나름 장사가 잘 되었다. 게다가 수퍼 주인 아주머니는 지금도 이십 년이 넘게 나와 연락을 하고 있는 태영이라는 친구의 이모 할머니였다.
빵집 옆 건물의 윗집이 미장원이었는데, 사실 이 건물에 우리 엄마가 화방을 시작했던 건물이다. 그런데 내가 어렸을 때에 건물에 불이 나서 엄마는 화방을 그 건너편으로 옮겼다. 불이 나던 밤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쌍둥이 형제가 오토바이를
타는 미화를 즐겨보곤 했는데 그날은 잠을 자다가 엄마와 누나들의 아우성에 성급히 밖으로 대피했던 기억이 난다. 그
좁은 가게 방 안에서 종종 잤던 것 같은데 무슨 얘기를 했는지, 엄마의 모습은 어떠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미용실 주변에 대한 기억이 장황하여도 정작 미용실에 대한 기억은 짧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미용실에 가서 내 머리를 잘랐고, 미용실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머리 좀 감겨야겠네요. 냄새가 나요"
혀를 조심하자. 누군가에게 당신은 그저 그 한 마디인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다. 말하고 나니 무섭다. 그 아주머니를 다시 만난다면 상큼한 샴푸향이
가득한 내 머리를 들이밀고 싶다.
#2. 아빠와
아빠는 새로운 걸 무척 좋아하셨다. 그래서 아빠와 머리를 자르러 간 곳은 늘 처음 보는 곳이었고, 아빠는 차를 타고 가다가 이발소가 보이면 즉흥적으로 가서 머리를 잘랐다.
아빠는 내 머리에 대해 이렇게 늘 주문하곤 했다.
"아주 짧게"
#3. 할머니와
할머니와 머리를 자르러 간 곳은 꽤 많았을 테지만 선명하게 기억이 남는 곳은 두 군데다.
한 곳은 효제국민학교 주변에 있었던 3층 건물의 1층에
있었는데 내가 머리를 자를 동안, 할머니는 거기에서 일하는 처녀가 귀 파주는 걸 좋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슬픈 일이기도 하다 - 할머니는 딸이 없어서
– 이번 가족 모임 때엔 누나와 며느리를 시켜 엄마 귀를 파줘야겠다.
할머니는 그렇게 내 머리를 자르게 하고, 본인의 귀청소도 하면서 그 아가씨에게 팁도 주었다. 그 팁이 얼마였는지는 동전까지 기억할 정도로 생생한데 바로 500원이었다.
그리고 할머니와 나중에 탐색한 곳은 언덕 너머 동네였는데 그곳은 처녀 한명이 혼자 작게 차린 미용실이었다. 지금 어른이 되어 추측컨데 한 서른 전후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 그럼
지금은 오십이 조금 넘었겠다. 그 처자는 예쁜 얼굴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 하면 어린 내가 '못 생겼다'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거기 갈 때마다, "나는 멀어서 오기도 힘든데 우리 손자가 거기
처자가 예쁘고 머리도 잘 자른다고 우겨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여기 온당게"라고 하는 것이다.
그 땐 면도기처럼, 웽-, 하면서 머리를 자르는
기계가 처음 나왔을 때다. 물론 내가 사는 동네가 소도시다 보니 보급이 늦었을 수도 있다. 그게 어찌나 귀 옆에서 간질간질 대던지 나는 기계를 목이나 귀로 가져오기만 해도 꺄르르 하면서 피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할머니의 기막힌 입담으로 인해 그 미용실의 처자는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순수한 어린아이는 역시 나의 미모를 알아본다'며
자신감을 얻었을 지도...
2010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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