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순간



대학교 때에 나는 국문학과 정치외교학을 복수전공하였는데 사실 마음은 국문학과에 가있을 때가 많았다. 나는 단편소설을 쓰기도 하고 시를 쓰기도 했다. 단편소설 중 나무인형이라는 작품은 희곡화되기도 했다. 시는 여러 편을 썼는데 시인 김승희 선생님께서 내 시를 참 좋아해주셨다.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참 멋스러웠다. 오전 10시가 되면 도시락을 다 까먹고는 점심시간엔 자전거를 타고 나가 경포대 해수욕장에서 교복을 훌렁 벗은 채 수영을 하다가 흠뻑 젖은 채로 5교시 수업을 들을 일이 많았으니까. 그 당시 나는 동해람이라는 문학단체에서 주로 놀았는데 형들이 많아서 좋았고 늘 시에 대해 이야기해서 좋았다. 그리고 강릉 문화회관인가를 빌려 시화전도 하였다. 그때 낸 책이 어디엔가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내가 문학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해 어느 날 생각해보았다.

 

고인이 된 아버지의 영향인데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아버지의 어린시절이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치 신화처럼 내 머리에 각인된 것 같다. 당시에 이외수는 아버지의 문학반 후배였고, 천상병 시인이 죽기 직전 입원했던 병원도 아버지가 잡아주었다고 한다. 어떤 시에서는 아버지의 이름 석자가 메기 주둥이라는 별명과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퍼즐 맞추듯이 인터넷이나 시집에 올라와 있는 아버지의 어색한 이름을 찾아 그 작가들을 만나볼까도 생각하였으나 왠지 업보를 쌓는 일 같아 그만 두었다. 그가 시에 미쳤었다는 얘기는 어린 시절 한 숨 섞인 할머니의 회고담에서부터 계속 들었다.

 

아버지께서는 종종 책을 사다 주셨다. 그 중에서 몇 번은 시집을 사다 주셨는데,양장본으로 나온 윤동주, 김영랑, 김소월 시집이었다. 내 나이는 아마도 열 살에서 열두 살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사실 난 시가 뭔지도 잘 몰랐지만 왜 그랬는지 그것들을 다 외우기 시작했고, 아버지가 '난 이 시가 좋다'고 말한 시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시집을 모두 외웠다. 나중엔 윤동주의 시 중 <별 헤는 밤>이라는 세 페이지짜리 시까지 외우게 되었다.

 

참으로 건전한 가족-

 

시집을 사다 주는 아버지와 그 시를 스스로 모두 외운 아이. 그 아이는 자기가 외운 시를 발표하듯이 외워 제낄 때에, 그리고 가족들이 놀란 눈으로 칭찬해줄 때에 조금씩 사랑을 느꼈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팀에서도 브랜드에 대한 캠페인으로, Discover the Origin이라는 캠페인을 실시한 적이 있지만, 내가 왜 문학에 자꾸만 눈이 가는지, 여기 오리진을 발견해서, , 남긴다.

 

2010 11 13, 집필실에서




바퀴를 밟아죽인후

 - 사랑스러웠던 아기벌레 뿌찌에게 바치는 시

 

2000년 作

 

귀엽고 통통한 바퀴벌레가 앙증맞게 걸어다닌다

아직 다 크지 않은

몸이 앙증맞은 그 아기벌레는

어머니와 형제들이 몰려간 그 커피 가루를 찾지 못해

어느 침대 카바 밑에서 울다가

 

뿌찌뿌찌

배부르게 먹고난 형들의 부름을 듣고

아장아장 걸어간다 뿌찌뿌찌

 

어지럽게 벌려놓은 책상위 스텐드 하나가

아기 벌레의 걸음을 인도한다

엄마엄마 뿌찌뿌찌

아기 벌레는 귀엽기도 하지

걸을 때마다, 어제 묻힌 똥이 채 마리지 않은 소리를 내기도 하여

뿌찌뿌찌 꽤뿌

꽤뿌꽤뿌 찌찌찌

 

아직 중력의 균형을 모르는 아기 벌레 뿌찌는

뒤뚱뒤뚱 뿌찌뿌뿌

 

12월의 밤, 포근한 방이 아닌 곳에서는 눈이 내리고

사람 하나, 따뜻한 방에서

chet baker, I love you를 듣는다

아기 뿌찌뿌찌는 박자 맞추기 힘든

Jazz에 맞춰 잘도 찌뿌찌찌

 

살랑살랑 더듬이 흔들어가며

엄마 찾아 뿌찌뿌

 

2000/10/17

이 시와 함께 발표한 내 마음에 아까징끼를 발라주오라는 시를 김승희 선생님께서 아주 좋아하셨지만 너무도 급진적인 시 형식이기에 차마 싣지는 않는다.


그리움

1995년 作

 

그리워

회색파도가 안고 들어가선

바다로 녹여버린

내 추억의 발자국이

 

그리워

한밤에 먹구름이 팔을 뻗어선

회색비로 녹아내리게 했던

내 맘 속의 노오란 달이                 

 

그리운데....

발자국 까지도...                                        

노오란 달 까지도...

 

내 눈 앞에서

어느새 바다가 되는 추억아 !

나는 모래를 만진다.

바다가 되면 모래가 그리울까봐

 

그리고

조용히 새벽 바다에 앉아

나를 녹여줄 뜨거운 태양을

출렁이는 물결의 노래로

맞이하련다.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 (), ()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아이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세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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