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순간



내 허벅지는 매우 튼튼한 편이라고 자신한다.

 

그에 대한 몇 가지 추정이 가능하다.

 

첫째로 유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모두 황해도 황주 출신이시다. 김구 선생의 고향으로 유명한 해주 옆이다. 외할머니는  젊었을 때에 뚱뚱했다고 한다. 외할아버지는 황해도 씨름 장사 출신이다. 당시엔 값어치가 높았던 황소를 상으로 받기도 하셨다. 내가 열살 쯤 되셨을 때 돌아가셨는데 키가 당시에180cm도 넘으셨으니 상당히 건장한 장사였던 것 같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때에 핸드볼 선수였다고 한다.

 

큰아버지를 빼놓고는 모두 살집이 없다. 큰아버지는 군에서 원사로 전역하셨는데 고등학교 때에 계도부장부터 해서 누구도 건드리지 못할 만큼 덩치로 좀 날리셨다고 한다. 당시엔 거의 100kg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전라도 장성에서 농사 겸 노후를 보내고 계신다.

 

둘째로, 후천적 요인.

 

내가 태어난 곳은 강원도 춘천시 중앙로 1 5번지다. 한 장의 사진으로만 더듬어 추억할 수 있다. 그 사진은, 지금은 쉰 다섯이신 막내 외삼촌이 고등학교 시절 교련복을 입고, 지금은 서른 다섯이 넘은 큰 누나가 돌이 되었을 무렵, 지금은 환갑이 넘은 어머니의 첫 출산을 축하하기 위해 집에 방문했다가 찍은 사진이다.

 

그리고 나서 내 짧은 인생필름의 첫 부분은 강원도 춘천시 효자동에서 시작하는데, 덩그러니 3층 아파트가 몇 채 있고 공터가 군데군데 있으며, 걸어서 5분이면 밭이며 산이 나오는 개발 한창인 소도시였다. 거기서 늘 어울리던 형들이 있었는데 우리가 하던 놀이는 이렇다.

 

쥐불놀이 - 밭주인이나 동네 어른들이 혼내면 재빨리 도망가야 했다

자전거 - 자전거 타고 두어 시간씩 나갔던 것 같은데 건물 한 채 없던 시골길이 금새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축구 - 엄밀히 축구라기 보다는 공을 마구 차고 다니는 것이다

귀신놀이 - 특정 코스를 정해두고 술래팀이 지나가는 것이다. 나머지는 군데 군데 숨어 '우악!'하면서 튀어 나와 겁을 주면 된다. 이기는 사람도 지는 사람도 없다.

술래잡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땅 따먹기

구슬치기

 

그런데 정말 기가 막히는 놀이가 하나 있는데, 바로 계주놀이다.

 

계주로 놀이를 하다니,

그렇다 정말이다.

 

우리는 큰 밭을 외곽 트랙으로 삼아 팀을 짜고, 바통 대신 손바닥을 찰싹 대리는 것으로 계주를 시작한다. 그러면 전략이나 스킬은 의미 없다. 그냥 냅다 뛴다. 지금 기억에 우리가 트랙으로 돌았던 밭은 1km는 되었던 것 같다. 주자가 한 바퀴 돌아오는 동안 우리는 실컷 잡담을 하거나 다른 놀이를 할 정도였으니까.

 

이 계주놀이가 내 튼튼한 허벅지의 다른 요인이지 않을까 싶다.

 

놀이로 계주를 하다니...

 

2010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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