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순간



어렸을 때에 나는 겁이 없던 아이였다.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교과서에 보면 동사무소에 대한 설명 밑에, 탐구과제 - 오늘은 동사무소에 가서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알아보아요 - 그런데 친구들을 몰고 진짜로 동사무소를 방문하다니. 내가 아홉 살 때 일이다. 친구들과 동사무소를 방문해서 교과서에 쓰인 대로 여기를 알아보러 왔다고 말하는 이 꼬마들이 무척 이상했겠지.

 

그런가 하면 나는 정말 숫기가 없고 겁 많은 녀석이기도 했다.

 

친척들은 이렇게 훌쩍 커버린 날 보곤, 너는 어렸을 때부터 의젓했지- 절대 칭얼대는 법이 없었는데 이렇게 훌륭하게 컸구나-라고 말한다. 한번은 피아노 학원에 처음 가는 날이었는데, 그 학원은 일반 가정집이었지만 피아노가 거실에 있고 그냥 가르치는 집이었다. 문제는 그 집 둘째 딸래미가 우리 누나와 동갑 친구로서 내가 그 누나를 엄청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이었고,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집은, 내가 오줌을 싸서 소금을 얻으러 간 집이었다는 것이었다.

 

엄마 아빠가 이미 다 그 '한솔이네 집'에 얘기한 상태였지만 나는 몇 시까지 가면 되는지, 가면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정말 가야 하는지, 가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수십 번 물어보고 칭얼댔던 기억이 난다.

 

피아노 학원에 그 어린애(여덟살)를 첫날부터 혼자 가게 하다니! 우리 집의 방목 시스템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하다.


피아노 학원은 같은 동의 1층에 있었다. 뒤에 보이는 게 피아노 학원.

2010년 11월 13일, 집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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