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순간



살아 생전에 아버지는 모임에 나가면, 별 것 아닌데 굳이 얘기한다는 말투로, 이 얘기를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하셨던 게 기억난다.

 

열 살이나 되었을까 신문배달을 한 적이 있다. 왜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시작은 굉장히 의욕적이었다. 3번인가만 빠지고 새벽 3시 반에 일어나서 전단지를 신문 사이에 끼는 작업을 하고, 본부장 아저씨에게 신문 약 80부를 받아서는, 당시 주공아파트 몇 개 단지를 자전거로 돌렸다. 5층에 사는 어떤 아저씨한테는 신문을 우편함에 꽂아 놨다가 불려가 혼나기도 했다. 당시 백 몇 동의 1층에 살던 외삼촌네 집에는 공짜로 신문을 넣어주기도 했다.

 

같이 우유배달을 한 친구는 태영이였고, 또 한명은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중학교 1학년 정도 되는 형이었다. 신문배달을 하는 도중에 야쿠르트 아주머니나 우유 배달 아저씨가 기특하다며 우유를 하나씩 건네주기도 했다. 귀엽게 생긴 어린 것이 자전거로 신문배달을 하고 있으니 “쯧쯧쯧” 어떤 상상을 했을지 뻔하다.

 

함께 신문 배달을 하던 그 형은 우유 배달함에 있는 우유를 슬쩍 해와서 우리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우리가 신문배달을 끝내고 집에 가기 위해 만나는 곳은 정해져 있었는데, 그 형은 우유 몇 개씩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하루는 형이 오지 않아서 걱정을 했는데, 알고 보니 우유 배달 아저씨한테 걸렸기 때문이었다. 우유 배달은 틀림 없이 하고 있는데, 우유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어느 집주인의 항의를 받았음이 틀림 없다. 직접 보지는 못 하였지만 우유 배달 아저씨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고 한다.

 

게다가 그 우유와 요구르트를 먹고 난 이틀 뒤에 그 형과 태영이는 식중독에 걸렸다. 이상하게 나는 식중독에 걸리지 않았지만…

 

어쨌든 신문배달은 한달 만에 그만두었고, 첫 봉급으로 나는 4만원을 받았다.

 

그 돈으로 나와 태영이는 양키 시장에 가서 3천원씩 주고 모자를 샀다. 모자에 박혀있는 글자는, 아마 처음으로 사전을 찾아보고 외웠던 영어 단어로 기억나는데, Flight. 비행이었다.

 

새벽에 신문을 돌리고 집에 가는 길의 그 뿌듯함, 봉급을 받았을 때의 뭉클함. , 자전거로 신문 배달하고 싶다. 요구르트도 슬쩍 훔쳐먹고 싶다.

 

그런데 일찍 일어나는 일은 싫으니. , 하루만.

 

2010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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