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놀라던 아이였다. 한밤 중에 흐느끼며 깬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여섯 식구가 모두 일어나서 나를 달래던 기억이 난다. 평소에 나를 안아주던 사람은 주로 할머니였는데 놀라면 엄마가 날 업어주곤 했다. 그래서 놀랄 때면 안아주던 등이 왠지 낯설었던 기억도 어렴풋이 생각난다. 내가 업혀 있는 기억은 그때가 유일한데 아마도 여섯 살이나 그 즈음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한 시간은 족히 업혀서 어루고 달래야 나는 다시 잠이 들곤 했다. 그때마다 꾸던 꿈은 늘 같았는데 회색 톱니바퀴 사이에 내가 말려들어가는 장면만 기억이 난다. 흔히 말하는 귀신이나 유령은 아니었다.
어느 날 밤이다.
그날도 울면서 업혀있는데 뭐가 먹고 싶냐고 물어 보며 나를 달랬다. 나는 울던 와중에도 “바나나…”라는 주문을 했고, 엄마였던가, 누군가 한밤중에 바나나를 사왔던 기억이 난다.
바나나 한 개. 틀림 없이 행복했겠지. 누나들이라도 구경만 했던 천 원짜리 바나나를 나 혼자 다 먹을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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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삽화는 모두 김재환 작가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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