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어린 시절 내가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친구들에게 해주면 좋아하던 스토리이다.
#1.
할머니가 어렸을 때엔 (할머니께서는
그때만 해도 호랑이가 많았다는데, 동네 아주머니끼리 나물 캐러 산에 갔다가 호랑이 굴을 몇 번 발견했다고 한다. 호랑이 새끼만 있고 어미는 없는 굴이었는데, 굴에 돌을 던지거나 해코지를 한 경우엔 호랑이가 보복을 했다. 한번은 새끼를 괴롭힌 사람이 모가지만 나무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호랑이 새끼를 예뻐하고 쓰다듬어 주면 반대로 호랑이가 복을 주었는데, 할머니도 그런 경험이 있다고 한다. 당시 밤길은 짐승의 습격을 받기도 하는 등 야생 그대로의 위험이 존재했다고 한다. 할머니가 어느 날 장사를 마치고 밤 늦게 집에 가는데 뒤에 호랑이가 따라오는 걸 느꼈다고 한다. 할머니는 너무 무서웠지만, 호랑이는 '어흥-'하며 앞으로 ‘계속 가라’는 “시늉”을 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호랑이는 할머니가 지 새끼를 이뻐하는 걸 눈 여겨 보았다가 집에 가는 길을 배웅해준 것이라고 한다.
DSC02488 by muzina_shanghai |
#2.
김해 김씨의 대단한 가문에서 자란 할머니는 어렸을 때엔 아흔 아홉 채로 이루어진 비옥한 전남 땅 장흥의 한옥에 살았다고 한다.
당시엔 개가 오래 되면 사람처럼 행동한다는 설이 있었다고 한다. 그건 사람과 함께 먹고 자는 요즘의 개들과 마찬가지인 것 같지만, 할머니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 당시의 개들이 더 뛰어났던 게 틀림 없다.
어느 날 할머니는 부엌에 넣어둔 꿀단지에서 자꾸만 꿀이 없어지는 걸 발견한다. 할머니는 수소문 하고 알아보았지만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외출을 하는 척하며 부엌을 숨어 지켜보기로 한다.
하얀 진도개였던 당시 백구는, 매우 성실하고 품행이 방자한 개로서 함께 10년도 넘게 살아온 녀석이었다.
백구는 주변을 몇 번 둘러보고는 아무 사람도 없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백구는 아궁이 앞으로 의자를 밀더니 그 위로 펄쩍 뛰어 올라간다. 그리고 뒷 다리로 지탱해 사람처럼 번쩍 일어서더니 두 앞발로 찬장을 연다. 그러더니 두 앞발, 아니 이제 손이라고 하자, 두 손으로 꿀단지를 집어 조심히 내려온다. 그러더니 주둥이도 아닌 두 손으로 꿀단지를 푹 쑤셔 넣더니 입으로 가져가 쪽쪽 빨아먹고 핥아 먹는 게 아닌가. 백구는 주변을 의심스럽게 둘러보고는, 다시 두 손으로 꿀단지를 깨지지 않게 조심조심 들어 찬장에 올려놓고, 문을 닫고, 의자를 다시 있던 자리에 놓는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부엌문을 나온다.
심지어 백구가 말을 하는 걸 본 사람도 있었으나, 할머니께서 직접 듣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 책의 삽화는 모두 김재환 작가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할머니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이다.
2010년 11월 13일, 집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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