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순간



살다보면 이유없이 화가 나고 짜증이 날 때가 있다. 출퇴근 길에 꽤나 먼 내게는 징크스가 있다.

출근길에 듣는 음악이 랜덤으로 듣고 있는데 모두가 뻔하고 지겹게 느껴진다면? 그 날은 상태가 안 좋은 날이다. 세상에 감사하거나 사람들의 친절한 웃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있는 것이다.

오히려 무신경하고 시큰둥한 내 회답표정과 애정 없는 목소리가 그들에게 더 상처를 주기 쉽다.

이런 날이면 밀도가 높은 서울생활하고 있는 나같은 촌놈 출신은 더 힘들다. 오늘 따라 옆 처자는 덩치가 너무 커서 앉아있기 힘들 정도로 내 어깨를 조이고, 앞에앉은 아저씨에겐 담배 냄새가 난다. 사무실은 난방을 너무 해서 덥다. 날 귀찮게 하는 메일이 자꾸만 날아온다.

이런날 재수 없게도, 평소 싫어하는 사람과 같은 퇴근길 지하철에서 만났다면.
침묵이 더 참기 힘들어 자꾸 원치도 읺는 헛소리를 하는 내가 더 싫다. 평소 기분이 좋을 때면 낯빛이라도 꾸며가며 재밌는 얘기로 다시는 없을, 혹은 없게 할, 이 사람과의 대화를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거나 나 스스로를 아름답게 자존하기 위한 기회로 삼을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불행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이런 상황에 맞닥뜨릴 때다.

난 이사람에게 내 애정을 마음껏 쏴대서 더 가까워지고 또 더 특별해지고 싶은데, 아침에 랜덤으로 돌려봐도 그 음악이 영 시원치 않은ㅡ 그런 아침으로 시작했다면, 이 기분에 맞는 표정 또한 영 시원찮기 때문이다.

내게 큰 가치가 있는 이런 사람들과 이런 불행에 맞닥뜨릴 때
조금 비약하자면,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 만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떠오른다.

마음이 온통 불안,불만,미움,불편함으로 가득 차있다면, "가치"있어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을 만나도
스파크 없는 가스통처럼 의미 없을테므로.

다음에 사랑하는 혹은 가까워지고 싶은, 더 알고 싶은 그런 사람을 만나는 날엔
어떤 음악에도 엉덩이가 들썩이는, 아침이었으면 좋겠다.


아이폰으로 퇴근 길에, Tistory App으로.

2010년 12월 20일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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