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순간



시간이 없다면 초간단 분석을 해보세요

 

분석, 해볼만하다. 시간이 있다면. 

우리 직장인들에겐 시간이 없다는 게 문제다. 일을 시키는 입장에서는 무한한 시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맡고 있는 프로젝트 목록은 우선순위가 존재하지만 사실은 윗사람이 물어보고 닥달하면 갑자기 최우선순위가 된다. 우선순위가 아니라고 말하기엔 게으른 직원이 되거나 찍히거나.

시간이 있다해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는다. 직장인들이 가장 하기 싫은 것이 분석이니까. 학자들은 하나의 주제와 연구결과를 위해 꾸준히 탐구한다. 분석이고 실험이다. 직장인들은 열 개의 주제와 당장 해결을 바라는 문제 더미들 속에 산다. 말을 안해서 그렇지 가끔은 울고싶을 때가 많다 - 일이 너무 많아서, 끝이 안 보여서. 분석은 다분히 학문적이고 논리적이다. 실행이 아니라 사고하는 과정이다. 마음이 바쁜 사람의 분석이라는 것은 애초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태생적으로 분석하길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이 여러분의 상사가 아니길 기도해본다. 분석하길 좋아하는 사람에겐 우리같은 보통사람은 아마추어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분석도 없이 섣불리 움직이려 하다니 그 리스크 risk는 어쩌겠다는 말인지. 

분석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흔한 단점은 비효율성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분석에 너무 빠진 나머지 불분명한 목적을 갖고 데이터 사이를 떠돌아다닌다. 집에 가기 싫은 중학생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듯이. 실무하는 사람들의 분석은 짧고 굵어야 한다. 핵심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떤 핵심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분석은 자기의 역할을 다 한것이다. 이제 다음 단계 -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 로 넘어가도록 선이 그어진다면 좋겠다. 그렇다고 분석을 피하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분석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스킬셋 skill set 의 핵심이다. 분석에 친숙하지 않고서는 똘똘하고 스마트하다는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둘 다를 만족시킬 수 있는 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초간단 분석이다. 빨리 그리고 간단히 목적을 달성하는 분석이라면 우리가 인내해야 할 최소한의 직업적 윤리라고 수긍할 수 있을 것 같다. 끌지 않고 간결한 핵심이야말로 전략적 대화의 기본이라고 다짐하면서. 

스마트폰으로 구글 검색을 할 줄 안다면, 그리고 SWOT과 4P에 대해서 들어보았다면 이걸로 끝이다. 간단하면서 합리적인 비즈니스 대화법에 동의한다면 그리고 <필수 마케팅 개념 100개> 같은 상술에 흔들리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마케팅 교과서에 나오는 SWOT, 4P로도 충분하다. 문제는 이런 도구를 올바르게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이지 새로운 개념을 자꾸 유행처럼 만들어 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첫번째 할일은 말하고자 하는 키워드에 대해 검색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에서 키워드의 정의에 대해 검색한다. 왜냐면 정의가 명확해야만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바로는 분석이란 <복잡한 전체를 구성하는 요소를 쪼개어 단순하고 명쾌하게 설명하는 일>인데 상대방은 숫자 데이터를 통해 현상과 원인을 찾아내는 것을 분석이라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으므로 두번째 단계로 넘어간다. 지금 검색한 키워드의 구성을 확인한다. 키워드를 있게 하는 하위 요소들이 있는지 체크하는 것이다. 있다면 적어둔다.

그 다음은 SWOT 이다 - 이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하지 않겠다. 검색창에 SWOT 으로 검색하면 쉽고도 자세한 예시를 많이 볼 수 있다. 수첩에 써도 좋고 벽에 보드가 있다면 일어나서 상대방이 볼 수 있도록 그려가며 논의해도 좋다. 

경험을 토대로 보면 정의에 대해 논의하고 SWOT을 함께 적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협의점이 생긴다. 특별히 결론을 내지 않아도,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 논의하지 않아도 말이다. 서로 이 상황의 긍정적인 면, 부정적인 면을 검토하면서 이미 어느 정도의 방향성이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SWOT이 조금 부담스럽다면, 혹은 이 조차도 시간이 아깝다면 더 단순화시킬 수도 있다. Pros/Cons 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장점과 단점을 검토하는 것이다. 

특히 이 세 가지 단계는 미팅에서 활용하면 좋다. <분석해서 한번 봅시다!> 이렇게 따로 미팅이 잡히는 순간에 그 즉시 써먹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첫째, 몇일을 분석의 노예로 보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를 구해줄 수 있다. 이미 여러 면을 검토하면서 - 단순히 pros/cons라 할지라도 - 방향성에 있어 관련자 stakeholder 간에 구체성이높아질 수밖에 없다. 결정권자가 미팅 중에 있다면 더 좋다. 어느 정도 구체적인 브리프 brief가 나올 확율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짧은 절차가 없었다면 <그래, 한번 분석해 보고 나중에 다시 모입시다>라는 말은…

둘째, 정의를 살펴보고 장단점을 살펴보는 과정은 우리의 원맨쇼가 아니다. 왜냐하면 미팅중이기 때문이다. <On air>라는 불이 켜져 있는 한 방송인들은 <방송모드>다. 우리네 비즈니스도 그렇다 - 아, 제발! 미팅에서 <On air>가 켜져있을 때에 함께 분석을 한다는 것은, 참석자들이 참여도에 대한 압박을 느낀다는 말이다. 자연스럽게 SWOT 과 장단점에 대해 도움을 주거나 혹은 다른 생각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공동의 목표를 위한 아이디에이션 ideation 회의는 참석자들의 정서적 관여도를 높인다. 최소한 이 회의에서 말한 내용에 대해서 반대나 거부의 확률을 현저히 줄인다.   

마지막으로 이런 행동은 우리를 더 전략적으로 보이게 한다. 

 

잠시만요. 분석이 필요하긴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범위가 너무 넓으니까 여기서 짧게 분석하고 협의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차피 목적은 결정이죠. (그러면서 책상 앞으로 걸어나가 펜을 집어야 한다). 원빈을 재계약하느냐 아니면 대안을 찾느냐를 후회없이 선택하는 것이죠? 재계약이라는 게 사전을 보니 계약을 다시 맺는다고 정의되어 있네요. 그런데 저희는 좀더 확실히 협의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가 원하는 것이 지금 조건대로 계약을 연장하는 것인지 아니면 조건을 바꾸어서 비용을 줄이거나 혜택을 더 받는 효율쪽으로 계약을 다시 하자는 것인지요. 분석해서 다음 미팅 때 모였는데 이 점 때문에 모든일을 처음부터 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분석을 하긴 하더라도, 지금 5분동안 간단하게 분석을 함께 해봤으면 합니다. 첫번째 옵션은 그대로 연장. 두번째는 조건 변경해서 다시 계약. 세번째는 모델 변경. 자 여기에 각각 조건의 장단점 pros & cons 를 적어볼게요. 일단 그대로 연장할 경우엔, 음, 굉장히 빠르게 진행이 되겠네요. 원빈 측과 서로 양보하는 느낌도 있구요. 쓸데없는 장애물 없이 안전한 선택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네요. 단점으로는 원빈 씨 계약을 처음에 좀 싸게 해서 동의할지 모르겠어요. 대리님, 혹시 원빈 검색 한번 해볼래요. 요새 드라마나 영화 새로 하는 것 있는지요. 그러면 몸값이 좀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요. 구매팀에서는 오히려 가격을 좀 깎을 수 없냐고 하네요. 그대로 연장하면 가격 네고의 여지는 좀 없어지네요. 이건 단점이 되겠네요. 혹시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 좋은 생각이시네요. 혹시 다른 의견…. 그러면 두 번째 옵션으로 넘어가서…. 

 

잃을 게 없다. 이 팁으로 사람 살리는 걸 여러번 봤다. 죽음의 보고서에서 말이다. 가장 이상적인 효과는 분석이 취소되고 바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혹은 <뭔지 모르지만 일단 해보자>는 사람 여럿 죽이는 분석에서, 상당히 구체적으로 좁혀진 분석으로 바뀌는 경우다. 미팅에 있는 사람들이 동의를 하거나 혹은 결정권자가 영향력을 행사하게 만드는 것이다. 단, 미팅에서 이런 해피앤딩을 위해서는 여러분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야 하고 (양이 많아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사회 기술 facilitating skill 이 있는 위임자가 있으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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