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순간



 



분석을 잘하는 사람하고는 친해지고 싶지 않았다.

분석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하나같이 유쾌하지 않은 것들 뿐이었다. 잃어버린 100원을 추적하던 ‘야간 장부 수사대’나, 자기가 무슨말을 하는지 모르고 떠들던 회사 선배.

그런데 세월이 지나서 나는 지금 분석에 대해 쓰고 있다. 천지가 개벽했나.

내 인생에서 참 많은 사람들이 분석에 대해 떠들었다. 그중 단 한 사람도 분석에 대해 알려주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사람들이 분석하라는 말이 뭘 뜻하는지 쉽사리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들도 몰랐던 것 같다. 어려운 말 뒤로 숨었던 게 아닐까. 그러니 나도 모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 젊은날에 서로에게 무슨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일까. 차라리 너의 꿈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면 그 사람들 중 한 두명 쯤을 지금 그리워하고 있었을 것이다.

팔을 걷어 붙였다. 분석이 도대체 뭔데.

마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한 권을 뜯어먹으러 절로 들어가는 애송이 대학생처럼.
그런데, 이런. 분석은 숫자가 아니었어.

젠장. 너무도 간단했다. 내가 분석이라는 놈 때문에 마음 졸였던 시간들을 생각하니 처음엔 황당하다가 나중에는 괜히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고 하면 거짓말일까? 그깟 분석이라는 놈 때문에?

분석이란 알고 보니 쪼개는 것이었다. 정말이다. 사전에도 그렇게 나와있다.

얽혀 있거나 복잡한 것을 풀어서 개별적인 요소나 성질로 나눔.

“네가 누구인지 갈기갈기 까발려 주겠어.” 이 말을 좀 점잖게 표현하면 “당신이 누구신지 제가 분석해드릴게요”다.

일주일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나.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일주일에 대한 분석이다. 거꾸로 월, 화, 수, 목, 금, 토, 일을 합치면 일주일이 되나? 그렇다.
나는 갑자기 이런 과제를 상상해보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하루를 분석하시오.”

분석이 뭔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예컨데 예전의 나다. 알 수 없는 말로 젊음을 허비했던 그 선배라도 예외는 아닐테고.

나는 하루키의 하루가 어떤 일들로 채워져 있을지를 생각해본다. 기사를 찾아보았다.

하루키는 새벽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바로 글을 쓴다. 멋진 사람이다. 원하는 양에 도달하면 글을 멈추고 점심을 먹는다. 합리적인 사람이다. 밖으로 나가 달리기를 하거나 수영을 한다. 대단한 사람이다. 돌아와서 식사를 하고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다. 아름다운 사람이다. 저녁 9시 정도에 잠든다. 정신 나간 사람이다.

이를 통해 분석해보니, 에헴, 하루키 씨의 하루는 집필과 운동이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쓰는 데에 다섯 시간을 바친다. 두 시간 동안 운동을 한다. 그리고 나는 제목을 좀더 멋있게 수정한다. 시간 프레임으로 본 무라카미 하루키의 하루 분석 - 쓰기와 운동.
이렇게 쓰다보니 갑자기 재밌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 인생은 무엇으로 채워져있나에 대해 분석해보는 일이다 - 나중에 생각해보니 실은 재밌는 생각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하루키 분석을 따라서 나도 내 하루에서 출발해보았다. 하지만 이는 좋은 생각이 아니다. 이걸 금새 깨닫는다. 하루키의 하루는 그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것들로 채워져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그점이 꽤 슬프다.

나는 왜 하루키처럼 중요한 일들로 하루를 채울 수 없는 것일까. 하루라는 내 방을 들여다 보면 인상이 찌푸려진다.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은 없고 온통 내가 원하지 않았던 것들이 가득 들어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방문을 세게 닫아버린다.

저녁을 먹고 나니 마음이 좀 풀린다. 다시 그 방 앞을 서성인다. 그러다가 나는 이런 질문을 던져보았다.



“내가 채우고 싶은 것들이 있긴 해?”

내가 원하는 분석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결국 이 질문을 답하기 위해서는 가장 근원적인 분석까지 가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내가 채우고 싶은 것을 알려면 나를 알아야 한다. 나를 분석하려면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을 찢어발겨야 한다.

아, 너무 투머치인가. 참치회 뜨듯이 부분부분 잘라내어 아가미는 저기로, 뱃살은 여기로, 그리고 고독하고싶은 마음은 여기 큰 다라이 위에, 마케터라는 직업은 작은 스댕 그릇 안에, 가장이라는 의무는 여기 저울 위에 떨어지지 않게 조심히 놓는다는 게.

핏자국이 낭자하더라도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이중에 내 방을 채울 놈을 찾아낸다고 말이다. 나는 하루 종일 부둣가에 앉아 칼을 들고 나를 해체했다가 조립하기를 반복한다. 어떤놈은 빼먹고 조립해도 된다. 여전히 나처럼 보인다 - 사실 우리는 대부분 동일한 물과 단백질 원소다. 어떤놈은 빼먹었다가는 큰일난다. 그게 없으면 내가 내가 아니다. 나는 그런 놈들을 가져다가 내 방에 가져다가 채우고 싶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채로 심장이 벌렁거리는 채로 내 방에 채워두고, 그런 것들이 가득한 하루와 그런 하루가 가득한 인생을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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