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순간



생각해본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되어 보는 것입니다. 


생각한다는 말에 대해서 생각한다. 좀 말랑말랑하게 생각해보았다. 생각이 꼭 어떤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한다는 동사는 어떤 대상을 온전히 이해하게 만든다. 생각을 잘 완수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재료가 있다.

시간.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 시간을 따로 내서 그 무엇인가에게 헌납해야 한다. 그것에 대해 생각한다는 건 귀중한 시간을 헌납한다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고 할 때, 우리는 그것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한다. 생각이 끝나고 나면, 시간을 다시 거두어 들인다. 또 다른 것에 쓴다. 이제는 그것과 더이상 하나가 아니다. 그랬었지 하고 추억할 뿐이다. 

그것이 되기. 시간을 내서 그것이 되는 것이다. 비즈니스를 이야기하며 우리는 내내 소비자에 대해 말하고 있다. 혹은 거래처의 고객에 대해. 사랑하는 사람이 느끼는 걸 나도 똑같이 경험하고 싶다면 그 사람이 되어야 하듯이, 소비자도 그렇다. 소비자라면 어떻게 할까. 고객사라면 어떻게 할까. 시간을 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그것이 되어 보는 것이다. 자신을 버린다는 이야기는 이제 낡은 현대판 만트라다. 그렇지만 자신을 버리면 버릴 수록 우리는 더 쉽게 그것이 되는 걸 어쩌랴. 이것을 몰입도나 집중력이나 관여도라는 과학적 심리적 언어로 표현해도 상관없다. 우리의 일상언어로써 나는 <나를 버린다>가 더 와닿는다. 

나는 백억원 대의 자산을 소유한 적이 있다. 빌딩도 몇 채 갖고 있었다. 한도가 없는 카드를 쓰다보니 과연 돈이라는 것의 실체가 있기는 한 것인지, 공기나 햇빛처럼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돈으로 유흥주점 가서 술을 마시고 외제차를 타기도 했다. 비록 몇일이긴 해도 나는 충분히 누릴 것을 누렸다. 나는 그 모든것을 아무 조건 없이 그냥 포기했다.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주인이 없는 것은 원래 있었던 곳에 그대로 놔두었다. 한번 가져보았으나 큰 감흥이 내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약 180년 전에 한 빈털털이도 이런 생각을 했다. 월든 호수에서 살았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Henry David Thoreau다. ( 미국의 수필가, 시인, 철학자. 출생 1817년 7월 12일. 사망 1862년 5월 6일. 대표 출판물 <월든>이 있고 그의 에세이 <시민 불복종>은 간디, 톨스토이, 마틴 루터킹에게 영향을 주었다.) 


얼마나 빈털털이로 살았는지 무소유로 정진했던 법정 스님이 마음 속 멘토로 삼았다. ( 법정은 죽기 전에 미국 메사추세츠 콩코드 지방에 있는 월든 호수를 세 번이나 여행했다. 그의 책 <무소유>와 <오두막 편지>에서도 <월든>을 언급했다.)


그는 지인의 땅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그리고 이틀을 혼자 살았다. 그의 취미는 자연을 관찰하고 다른 사람들 그리고 인류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었다. 이 <생각>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는 잘 가꾸어진 남의 농장을 소유하면서 가축을 기르기도 하고 그걸 팔아다가 목돈도 벌었다. 그가 좋아하는 산책로에 있는 땅을 소유하기도 했다. 철도를 놓는 일꾼이 되어보기도 했다. 생각으로 말이다. 그러면서 소로우는 이야기하길, 다시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었는데 왜냐면 큰 감흥이 없었기 때문이다. 


농장을 소유해봤자 매일 일에 얽혀 있어야 한다. 유지하지 않으면 폐허가 되기 때문이다. 가축을 먹이기 위해 건초를 사와야 하는데, 그것은 가축이 날 위해 일한다기 보다는 내가 가축을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냥 넓은 들판에 앉아서 그것을 소유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이 결국 소로우가 원하는 방식이었다. 

소로우가 들판에 앉아있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는 시간을 내어 산중턱의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는다. 입에 버드나무잎을 물고 농장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내가 농장 주인이 되어 보는 것이다. 아 저기 돼지 우리가 있군. 먹이를 줘야겠는데. 아 저기 소들이 있구나. 건초값이 비싼데. 봄에는 저 냇가에서 멱을 감을 수 있겠구나. 겨울에는 찬바람이 계곡을 따라 내려오네. 자기 전엔 늑대 무리가 닭들을 잡아가지 않도록 보초를 서야겠구나. 뿌듯하긴 하지만 이렇게 일해서 내가 지금보다 나아지는 것은 딱히 없구나. 차라리 내 오두막에서 아무것도 얽매이지 않고 사는 것이 더 좋구나. 자, 이제 내 곁을 떠나라 농장아, 소야, 냇물아. 

계절이 바뀌고 가을이 찾아온다. 책상받침으로 쓸만한 나뭇가지를 찾아 나서다가 소로우는 오랜만에 농장을 바라보게 된다. 소로우는 잠깐 앉아서 다시 농장을 바라본다.

한때는 저 농장을 소유했었지. 

그는 농장에 대해 주인만큼이나 잘 안다. 어쩌면 주인보다 더 잘 알지도 모른다. 익숙해버린 주인은 낯선 눈으로 바라보는 호기심 넘치는 새 주인이 있는지도 모르고 일상을 보내고 있다. 소로우는 그 농장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생각해보았다>고 말할 수 있다. 

180년 후로 돌아와 이 농장이 매물로 나와 우리 회사도 입찰을 하려고 한다. 농장의 외형적인 숫자와 가격이 데이터로 나오긴 하겠지만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만큼 이 농장을 <생각>해본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57,000 m²크기에 돼지 10마리, 소 5마리, 닭 20마리. 과연 이 숫자들이 농장의 진짜 모습과 얼마나 닮았는지 모르겠다. 각종 숫자 목록이 10페이지로 펼쳐진다 해도 마찬가지다. 이 농장을 다른 농장들로부터 구분할 수 있는 특별한 점이 있는지를 숫자로 알아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사람을 수치화해놓으면 비슷할 수도 있겠다. 그 사람의 정성적인 면을 빼고 숫자로 이야기한다면 그를 진짜로 <아는> 게 아닐 수도 있다. 시간과 몰입 - 일체감이 없으니 말이다. 농장을 보는 것은 직원으로써의 자신이다. 그걸 버리고 농장 주인이 된다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 냄새나 추위까지도 느껴질 지도 모른다. 이 많은 농장일들 때문에 갑자기 짜증스러운 마음이 생길지도 모른다. 직접 소유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면은 장점과 단점을 초월한다. 

왜 한국 드라마에는 늘 시한부 환자가 나오나요. 한국에는 출생의 비밀이 정말 그렇게 많나요. 대학생들은 인스타그램 계정을 두 개씩 가지고 있다는데, 개인용, 공개용, 그건 왜 그런 건가요. 누가 봐도 비합리적인데 왜 옆팀은 계속 이 안건을 주장하는 걸까요. 저 코미디언은 왜 저렇게 남을 험담하면서 웃기는 걸까요. 너 왜 이렇게 고집을 피우니, 이유가 뭐야. 

충분히 시간을 내어 그 사람이 되어보면 답이 보이려나. 우리가 <생각해보았다> 그래서 <안다>라는 것이 쉽지 않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에 비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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