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수영을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사실은 예전에도 배우다 말기를 여러번.
덩달아 골프도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스크린 골프장을 기웃거리며 휘둘러 보길 몇번.
동시에 육아도 배우기 시작했다 -신생아와 죽은 사람의 시체는 우리가 삶을 배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기회다.

각설하고. 이런 저런 걸 배우다 보니, 역시 '도'는 깊어지면 통한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당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인생은 당구와 같다 말하고, 춤을 좋아하는 사람은 춤판은 인생과 같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연극이 인생과 같다하고, 누군가는 축구와 같다고들 한다'

인생을 배워가는 자세와 닮은 점이 있어 스스로 기억하고자 하여 쓴다.


1. 숙성과 발효

흠뻑 젖고 싶다면 조급해 하지 말고 그저 빗속에서 가능한 한 오래 서 있으라.


수영에서 팔동작과 다리동작을 배웠다고 해서 바로 물개처럼 헤엄을 잘 치기란 어렵다. 팔다리몸통과 호흡법, 물속에서부터 수면으로 숨 쉬러 올라오는 각도와 입 벌리는 크기 또는 타이밍은 공통된 정답이 없기에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혹은 물속에서 고개를 돌릴 때에 옆 레인 아가씨의 다리를 보는 게 맞는지 내 어깨를 따라가는 게 맞는지, 그 순간에 집에 두고온 냉동피자를 생각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지금 내가 뭘하고 있는건지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건지는 테크니컬하게 규정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숙성이라는 컨셉트를 대입해본다. 말하자면 자기 스스로가 이 모든 습득물을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체득하는 단계가 숙성이다. 매일 연습한다고 해서 혹은 연습시간을 두 배로 늘인다고 해서 또 숙성이 되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시간이 흐르기만 하면 되는가, 그것 역시 더더욱 아니다.

적당한 수준 이상의 연습, 그리고 생각과 의도만큼 늘지 않는 자신의 실력에 대한 좌절, 짜증. 그런데 그러다가 또 한번은 잘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기도 한 phase가 수 차례 반복되고 그 사이에 시간이라는 양념이 버무려지면 비로소 딱지 위에 굳은 살 앉듯이 비로소 숙성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되지 않나 싶다.

머리 똑똑하고 눈치 빠른 사람에게 회사 생활 1년이면 돌아가는 사이클에 따른 업무 정도는 다 파악할 수 있다. 세계문학전집 깨나 읽고 연애 한 두번 해본 대학이라면 인생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대략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직장생활 몇년에 아이가 있다면 소주에 계란말이 시켜서는 '인생이란 게 뭐 별거냐'로 시작하는 그럴듯한 강연을 후배들에게 한두 시간은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필립코틀러나 알리스 잭트라우트의의 마케팅 책을 서너 권 쯤 읽는다면 시중에서 매출 수천억을 올리는 브랜드에 대해 별거 아니라는 듯 그럴 듯한 마케팅 비평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사평역에서'나 '햄버거에 대한 명상'같은 시집을 몇 권 읽으면 제법 시인같은 글귀를 써내려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선무당이다.

숙성이 필요하다. 어떤 원재료냐에 따라 생각보다 오랜 인내를 버텨내야 할 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인격이던 혹은 그게 어떠한 실력이라 할지라도, 강함과 부드러운 향기를 동시에 풍긴다면, 다소 은유적이어서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더라도, 그게 바로 발효와 숙성의 냄새리라.


2. 모나지 않게 다듬기

'창문이 더러우면 어떤 먼지나 얼룩이 묻어도 쉽게 티가 나지 않지만 깨끗한 창문이라면 아주 작은 티끌도 몹시 눈에 거슬린다.'


골프에서 백 스윙이 되면 피니시가 안 된다. 피니시가 될 무렵 공이 잘 안 맞는다. 공이 잘 맞을 무렵 고개와 허리가 자꾸 올라간다. 고개와 허리가 올라가지 않을 무렵 공이 슬라이드가 난다. 슬라이드가 교정될 무렵 다시 백스윙 자세가 이상해진다. 백스윙 자세가 다시 돌아오면 고개가 돌아간다...

하나를 배웠다고 해서 배움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이게 잘 되는 것 같으면 예전에 다 이루었다고 생각한 게 잘 안되기도 한다. 풍선처럼 여기를 누르면 저기가 삐져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인간의 삶이 원래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계속 다듬어 가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는 와중에 숙성되고 발효될 거라 믿는다.

특히나 나를 포함한 현대인들이 조심해야 할 다듬기는 '인간'이 아닐까 싶다. 일과 인간을 함께 다듬어가야 한다. 예전에 트위터에 남긴 글이다.

출퇴근 시간이면 안 그래도 붐비는 지하철에 폐지 수거하는 할아버지들이 승객을 마구 밀치고 다니는 일이 있다. 심지어 승객들을 장농이나 전봇대 같은 사물로 대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분들에겐 승객들이 사람이 아닌 '수거'라는 일의 방해물로 인식된다. 사람들은 눈썹을 찡그리고 할아버지에게 눈을 흘긴다. 그리고 일터로 나가 아침에 지하철에서 당한 것만큼 그들의 부하,상사,동료,협력업체 사람들을 인간이 아닌 process의 한 단계로 대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한다. 

[생각] - 마요네즈 병과 2잔의 커피 - 인생은 저글링 같다는 말도 있다. 일도 잘해야 하고 삶에 대한 본질도 끊임없이 탐구해야 하며, 내게 주어진 운명을 개척하는 데에 게을러서도 안된다. 하나 다음에 둘이라기 보단 하나와 둘을 같이 관리하고 다듬어가는 게 골프이고, 인생이고, 삶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보았다.


3. 공짜는 없다 

수영장에서 한 레인을 횡단하기 위해서는 물에 떠서 숨을 쉬어가며 팔다리를 저어야만 한다. 물에 떠있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기본적으로 해야 할 당연한 일이지 그것으로 자기 만족을 해서는 안 된다. 직장 다니며 돈을 벌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렸다고 해서 마냥 제자리에 만족한다는 것은 추진력이 없어 옆레인의 가벼운 물살에도 쉬이 가라앉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하니까.

공짜는 없다. 하나를 얻으려면 적어도 하나 때로는 둘이나 그 이상을 내주어야 한다. 위험감수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no risk no return) 수영하는 법을 훈련해서 앞으로 효율적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배우던지, 죽도록 허우적거리면서 앞으로 나아가던지, 어찌되었건 자기가 스스로 악을 쓰는 수밖에.


4. 숙성의 향기

숙성 편의 내용이지만 별도의 챕터로 뺄 수 있을 것 같아서.

상상하자. 한달에 한번씩 열번을 만난 사람과, 일년에 한번씩 십년을 만난 사람이 있다면. 그 향기와 깊이는 어느 쪽이 더 은은하고 오래갈까.

때로는 집중도와는 상관없이 시간의 문제일 때가 있다. 숙성은 기다림과 묵묵함이 잘 버무려진 절임이다, 성숙과는 달리. 숙성의 레시피는 노력과 좌절 그리고 기다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좌절도 달갑게 받아들여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또 다시 젖은 수영복을 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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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길복 2012.02.16 14: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제 물개가 되셨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