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 때, 블로그에 2013년 한 해를 정리하는 글을 쓰고 동시에 2014년 새 해의 꿈을 적겠다는 결심을 했다.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아무 것도 쓰지 못한 채 다시 새해 목전으로 돌아왔다. 2014년에 이루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기억 나지 않는다. 적지 않으면 의미없이 지나가 버린다는 스스로의 좌우명을 무시한 결과, “우물쭈물 대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1. 사람

 

살아가면서 상주 노릇은 몇 번이나 더 하게 될까. 3년 만에 다시 장례식장에서 완장을 찼다. 완장을 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새 가족이 태어났다. 죽은 이도 처음 태어날 때가 있었다. 그의 부모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죽은 이는 기억할 수 없다.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시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기억의 암흑기다. 갓 태어난 이도 머지 않아 다시 죽음으로 돌아갈 것이다. 죽음과 출생은 늘 있는 일이라 대자연의 입장에서는 찬바람에 낙엽 떨어지듯이 사소한 일이지만, 누구도 죽고 태어나는 것을 동시에 겪어본 사람은 이생에 없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렸다. 이제 막 어미의 자궁에서 나온 새 생명을 안아 본다. 그래, 한 세상 살다가 똑같이 죽을 일이면 제대로 살아보거라. 그리고는 내 일기장에 쓴다. 남은 삶, 기껏해야 몇 십 년, 제대로 살자.

 

2. 제대로 살기

 

작년에도 올해도 그리고 내년에도 쓰고 싶은 글이 있는데 바로 제대로 살아가기이다. 2011년이었다. 내 남은 삶에서 건져야 할 단 하나의 화두를 찾아냈다. 먼 훗날 그것이 틀렸다고 스스로 자괴할 지도 모를 일이다. 스무 살 때의 첫 사랑은 되돌아 보니 사랑이 아니었다고 숫접게 생각하는 서른 살 짜리 애송이처럼. 많은 책들이 하고 싶은 일을 좇으면 행복이 보이고 성공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책들을 거짓말이라고 부른다. 왜냐면 젊은이들의 고민은 내가 인생을 바쳐야 할 단 하나에 집중하지 못해서라기 보다는, 그게 뭔지 찾지 못하는 데에서 오기 때문이다. 보물 찾기에서도 그렇다. 여기 저기 쑤셔보고 방랑하지 않고서는 어떻게 보물을 찾아볼 수 있나, 그럴 수 있다면 이미 그건 사기다. ‘단 하나를 찾기 위해 내면의 소리에 어떻게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체크리스트가 있는지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그 좋은 미사여구가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이것이 내가 제대로 살아가기에 대한 글을 시작하고 싶은 이유다. 무상하게 반복되는 권태 안에서 건져 올린 것. 그걸 좀 젊은이들과 나누고 싶다. 어쨌든 내가 건진 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글이다. 글이라고 한 글자로 표현하기엔 모자라기에 사람들은 그것을 더러 콘텐츠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것은 소설이나 평전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음악이나 영화, 심지어 광고의 형태로 전달되기도 한다. 신에게 불평해봐도 더 많은 것을 주지는 않을 것 같지만, 미천하나마 내가 물려받은 유전과 재능이 그러하다. 그걸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 2011년부터 틈틈이 진화된 제대로 된 삶의 내 방식의 정의다.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단 하나에 더 우선한 시간과 에너지를 몰아주고, 그만큼 인생은 빼고 더 빼서 더 단순해져야 할 것이다.

 

3.

 

2011년인가, 육림공원 원숭이라는 비판매 도서를 한정판으로 출간했다. 그건 말하자면 스스로를 검증하고자 했던 pre M&E (measure & evaluate) 같은 것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검증에 성공했다. 그리고 올 해는 지루한 내 삶에서 기념비적인 해가 되었다. 자위하는 마음으로 썼던 육림공원 원숭이와 달리, 나를 본격적으로 세상에 내놓고자 하는 첫 발을 내디뎠기 때문이다. 6월인가 시작한 단편소설 구상은 7월부터 탄력을 받았다. 삶은 내버려 두면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흘러가 버린다. 단 하나가 있는데도 무던히 게으름을 피던 스스로에게 제안한 꽤 도전적인 과제였다. 나는 쓰기 시작했다. 만원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작은 메모지 뒷면에, 일본 출장 길 호텔 방에서, 점심시간에, 차 안에서, 허름한 모텔 방에서. 올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를 한 편씩 응모했다.

 

4. 기다림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은 주책 맞은 내 성격 때문에, 당장에라도 당선될 것처럼 흥분하지는 말자고 다짐을 했다. 그런데 기대했던 흥분 상태는, 한 봉우리를 이제 건넜다고 여겨질 뿌듯함 정도로 끝났다. 올 해에 나는 많은 기다림 앞에 촐싹댔다. 조급한 만큼 마음이 조려 평화를 찾기 힘들었다. 인사 이동에, 승진에, 기록을 갱신했다는 보너스에, 내게 왔던 스카우트 제의들에. 스톡데일 패러독스.[각주:1] 근거없는 희망에 뿌리를 둔 낙관자들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버티는 사람들은 냉철한 현실을 바탕에 묵묵한 신념을 지닌 자들이다. 올 한 해에, 낙관자로써 나는 기다리다가 지쳐버렸다. 나는 너무 많은 것들에서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새해가 온다. 그리고 지친 기력이 회복되는 것을 느낀다. 막 태어난 이에게 죽음을 보았다고 했다. 이 첫 단추는 그저 묵묵하게 내 길을 개척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확인시켜 줄 뿐이다.


끝.

 

  1. Good to Great 에서 묘사한 훌륭한 기업의 요건. 베트남전에 포로로 수 년을 복역하여 살아남은 스톡데일 장군의 태도를 통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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