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순간



최근 Zappos.com의 CEO인 Tony Hsieh가 쓴 Delivering happiness를 읽고 있다. 조만간 조촐하게나마 독후감을 써서 잊지 말아야 할 좋은 글귀와 생각을 남길 계획이다. 그 중 Zappos의 10가지 core value를 읽다가 든 생각에 대해 기록한다. Core value 중 하나는 "Be humble"이었고 그와 관련한 어느 Zappos 직원의 에세이를 담고 있다.

아래는 그 중 일부에 대한 발췌 및 초벌번역이다.

The typical industry approach is to trat vendors like the enemy. Show them no respect, don’t return their phone calls, make them wait for scheduled appointments, and make them buy the meals. Scream at them, blame them, abuse them… anything to get so much as possible and squeeze out every last dime. In fact, I know of a time when, after a vendor sold to an independent’s competitor, the buyer became so upset the he literally pulled down his pants and demanded the vendor kiss his ass!

[간단한 의견전달을 위한 초벌번역임]  업계에서는 통상 공급업자(vendor)를 적으로 간주한다. 존경을 보여주지 않고, 전화메모가 왔어도 다시 전화하지 않고, 약속시간에 기다리게 하고, 밥값을 내게 한다. 그들에게 소리치고, 비난하고, 지위를 남용한다... 가능한 한 뭐든 얻으려고 하고, 늘 쪼아붙인다. 사실 이런적도 있는데, 어떤 공급업자가 경쟁사에게 납품하자, 바이어가 굉장히 흥분해서 문자 그대로 그의 바지를 내리고 공급업체 사람에게 엉덩이에 키스 하도록 시켰다.

It’s a wonder people don’t realize that business doesn’t have to be done this way. Ultimately, each party is out for the same thing: to take care of the customers, grow the business, and be profitable. In the long run, it doesn’t behoove either party if there’s only one winner. If vendors can’t make a profit then they don’t have money to invest in research and development, which in turn means that the products they bring to market will be less inspiring to customers, which in turn detriments the retailer’s business because customers aren’t inspired to buy. People want to cut costs and negotiate aggressively because there’s limited amount of profit to be shared by both sides. As a result of this “death spiral,” most retailers fail.

사업을 꼭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왜 사람들이 모르는지 신기하다. 결국엔 각 입장에서 애쓰는 건 같다: 고객을 신경써서 관리하고, 사업을 키우고, 이익을 내는 것. 장기적으로 볼 때에, 한 명의 승자만 있다면 양측 모두에게 마땅한 도리가 아니다. 만약 공급업자가 이익을 낼 수 없다면 조사나 개발에 쓸 비용을 갖지 못한다. 그것은 곧 그들이 시장에 내놓는 제품들이 소비자로 하여금 덜 사고 싶게 만들고, 결국엔 소매상(바이어)의 사업에 손해를 끼치게 된다. 왜냐면 소비자들이 물건을 사고 싶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양쪽이 나눠갖기엔 이익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비용을 깎고 공격적으로 네고(협의)하길 원한다. 이 "죽음의 나선"의 결과로, 대부분의 소매상(바이어)는 실패한다.

1. 바람직한 갑-을 관계?

한국에서는 아쉽게도 Good company는 많을 지 몰라도 Great company에서 만큼은 불모지에 가깝다. 많은 기업들이 한국전쟁이후 설비도입을 통해 사업을 일으켰고, 시장 형성 초기에 정부와의 유착에 의해 그 규모를 키웠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데에 급급했던 당시 분위기로 인해 기업윤리나 기업가 정신은 사치로 여겨졌고, 대신 장사속 정신이 팽배했다고 본다. 한국에 대한 '기업가 정신의 부재'를 말하는 이유는 한국의 바이어들이 위에서 예를 든 나쁜 바이어들보다 훨씬 더 악덕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FMCG/CPG 마케팅/전략업무를 맡고 있지만 현재의 포지션 전에 세일즈에서 2-3년 근무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이 글이 무척이나 공감되었다. 을의 입장에서 거래처를 만나면서 굉장히 치욕스럽고 마음에 상처를 받는 일이 많았는데, 나 역시 이들은 (바이어) 인간관계에 대한 아주 작고 기본적인 매너가 없는 사람들인가-라는 생각을 여러번 했던 것 같다. 한국 까르푸의 매장 원칙은 '공급업자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였다. 물론 그 덕에 까르푸는 한국에서 망했다. 내가 만난 가장 무례하고 원칙없는 바이어 집단은 농협 하나로 마트와 까르푸였다 - 까르푸는 망했고 농협은 아직도 잘 살아 남고 있다 (지금도 나는 농협을 혐오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닌다.) 그들이 공급업체에 하는 무례함은 현대판 노예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이다. 반대로 내가 가장 인상깊게 만났던 조직은 이마트이다. 이마트의 바이어/관리자 집단은 한국에서 가장 매너 있다. 불가능한 것을 스마트하게 이해하고, 할 수 있는 것 내에서 좋은 결과를 위해 공급업체와 머리를 맞댈 줄 아는 사람들이다. 

한국 바이어들의 무례함, 악덕함, 초단기적 사고방식은 바로 기업가 정신의 부재 때문이다. 창업자의 정신이 훌륭하다면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올 것이고, 해당 임원들은 바이어에게 기업 윤리라는 것도 지도편달할 것이다. 그러나 창업자 정신과 기업가 정신이 없으니, 임원들이 바이어들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란 결국 "공급업체에게 delist한다고 협박해서 매입가를 낮춰라/장려금율을 높여라"와 "공급업체에게 비용을 부담하게 해서 1+1판촉행사를 해서 매출을 일으켜라" 정도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바람직한 갑을 관계에 대한 기초 모델 자체가 없다.

현재의 인식: 나는 너의 물건을 사는 사람이다. 따라서 내 말을 들어라. 안 그러면 안 사겠다.
바람직한 인식: 나는 너의 물건을 팔아 이윤을 남김으로써 사업을 키워간다. 따라서 우리는 협력자다.

2. 그럼 Zappos의 갑-을 관계는

책의 내용을 모두 옮길 수는 없지만 Zappos는 갑의 입장이면서도 잘못된 문화를 타파하고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 색다른 접근을 시작했다. 공급업체가 샘플을 들고 방문하면 문 앞에 세워두거나 할말을 잘라가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럼 할말 없으니 돌아가라-던지, 당신은 능력이 없어 보이니 당신의 상사를 데려오라든지 하는 태도 대신,

식사를 대접했고
공항으로 마중나갔고
첫 방문할 때에 회사 Tour를 시켜주었고
매출이 늘어나면 감사의 뜻으로 단체 티셔츠를 맞춰주고
연말이 되면 모든 업체를 초대해 Fun한 파티를 만들어 감사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회사의 매출정보를 낫낫이 공개해 보다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이 결과로 공급업체가 '기어오르는' 뻔한 예상과는 달리, 공급업체들은 Zappos와 일한다는 것에 커다란 자부심을 느꼈고 보다 나은 판매를 위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공동의 책임의식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의 가장 근본적인 철학은 다소 허탈하지만 바로,

3. Treat others as you'd like to be treated.


였다.

공급업체의 제품과 노력 덕분에 Zappos가 성장하고 있으니 이들은 바로 사업의 핵심 요소이며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협업자, 조력자였다. 그래서 Zappos는 그들이 소비자와 다른 업체들로부터 대접받기 원하는 만큼 그대로 공급업체에게 해주었다고 한다. 공급업체들이 Zappos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의 기업가 정신의 부재 역시, 사는데 빡빡해서 입에 풀칠하기 바빠서 서로가 뜨거운 피와 감정을 가진 인간임을 경시해서 나온  산물이 아닐까.


갑-을 관계에서 시작했지만 사실은 이 말이 하고 싶었다.  
 
뭐가 그리 중요하길래 사람들은 서로를 인간이 아닌 일로 대하는 것일까. 나는 이제 더 이상 을이 아니라 Super 갑의 위치에 섰지만 아직도 그 시절의 상처를 잊을 수 없고, 주변에서 동료들이 함부로 agency들을 대하는 걸 볼 때마다 화가 치민다.

지하철에서 신문수거하는 사람들을 본 일이 있는가. 만원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거세게 밀어가며, 얼굴 옆으로 위험하게 손을 뻗어가며 신문을 집고, 다른 사람 위로 신문뭉치가 떨어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걸음을 재촉하는 그 사람들 말이다. 그 사람들에겐 지하철 승객은 사람이 아니라 '방해물' 내지는 '물건'이다.

신문만 보고 사람을 보지 못하는 신문수거꾼과,
일만 보고 그 사람 감정은 보지 못하는 우리와 뭐가 다른가.


 -  얼마나 많은 이메일과 제안에 대해 우리는 네가지 없게 말하고 마는지... 그들의 자식은 몇 살인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함부로 말해도 될만큼 나는 잘 하고 있는지.. 등등

바람직한 갑-을 관계는 바로 바람직한 인간이 되는 게 아닐까. 모든 건 사람에서 시작되고, 사람은 바로 감정을 통해 행동을 만들어 내므로..

오늘도 무심코 부닥치는 서울 매트로폴리탄들과, 서로 눈을 마주치고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길.
모든 것을 애정어린 눈으로 헤아리는 건 득도하는 일 만큼이나 힘든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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