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의 힘
인지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인류는 본성적으로 이야기를 좋아한다. 생존과 단체생활에 필요한 정보의 양은 무궁무진했다. 정보의 조각들 중에 유용한 것들을 골라내고 집단에 유리한 쪽으로 설계하는 것은 늘 중요한 일이었다. 정보들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탄생했다. 이야기는 정보를 쉽게 이해하고 또 기억할 수 있게 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조직의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기능도 하게 되었다.
정보 자체가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는 있지만, 사람들을 움직이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다. 스토리텔링은 정보가 아닌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이다. 이야기 안에는 인간이 있고, 고난과 문제가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이루어진다. 고난과 문제가 있다면 나도 모르게 눈이 가고 집중이 되는 게 인간이다.
스토리텔링은 정보를 전달하지만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퍼져 나간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에는 목적을 awareness 로 보는지, engagement 로 보는지로 나뉜다. 이 둘다를 달성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아마추어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은 이 둘을 이어주는 비밀 레시피다.
스토리텔링에 대한 학술자료를 검색해보았다. 이런 키워드들이 함께 나온다. 판매 sell. 설득 persuasion. 고취 inspire. 동기부여 motivate. 행동 act. 스토리텔링은 지적인 행위가 아니라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행위를 유도한다는 증거이다.
훌륭한 스토리텔링의 요건
좋은 이야기들의 특징이 있다. <문제>다. 문제가 드러나야 좋은 이야기가 된다. 문제는 욕망,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보여줄수록 좋다. 이야기의 중심에 문제가 있고, 갈등이 심할수록 청중의 감정이입이 극대화된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장미빛 미래만 보여주고 싶어한다. 갈등과 문제들은 뒤로 숨긴다. 설득 Pitch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이상적인 미래는 지루하고 진부하다. 무엇보다 듣는 사람을 움직이지 못한다. 문제가 빠진 정보의 나열은 이야기가 되지 못한다. 스토리텔링의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이야기한다. 문제를 가장 핵심에 위치시키고, 그것을 주인공이 (혹은 우리가) 어떻게 극복했는지 혹은 극복할 것인지를 보여라. 기대했던 것이 어떻게 물거품이 되었는지, 반대파에게 뭉개졌는지, 삶의 추락했는지, 가진 것을 다 잃고 다시 시작해야 했는지, 위험을 안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그 선택을 통해 어떠한 삶의 진실을 발견했는지를 보여주라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그랬고 셰익스피어가 그랬던 것처럼.
언급한 6가지 스토리텔링의 요소대로 이야기를 시작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고, 지루할 뿐더러, 관심을 얻기도 힘들 것이다. 하나의 요소를 택해서 단순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 그 요소는 바로 4번인 문제다. 고난, 고민, 위기, 절망이다. 그 문제 덩어리가 엄청난 드라마가 된다.
Pitch는 설득하고 판매하기 위한 설명을 뜻한다. 수주를 맡기 위한 거래처 비딩 프리젠테이션이나 각종 소비자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스토리텔링의 정점은 이런 pitch를 단순하고 독특한 이야기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SK II 는 각종 원료의 장점과 화학적 효과를 설명하는 대신 사케 양조장 이야기를 꺼낼 것이다. 원료는 appendix일 뿐이다. 제 아무리 TV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에서 SK II 의 효능에 대한 의심을 제기하고 폭리에 대해 비판한다 하더라도, 이 이야기를 들은 소비자 마음 속에서는 SK II 라는 브랜드에 대한 감정이입 그리고 제품의 꼬락내가 주는 사케 양조장 느낌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SK II가 드러내고자 했던 갈등, 고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절망감이었을 것이다. 고운 피부를 갖게 하는 마법의 비결을 찾지 못했다는 절망감. SK II 는 이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전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야기를 몇 가지 기준으로 분류해놓았다. 포스터-헤리는 해피앤딩, 불행한 결말, 비극적 결말 세 가지로 분류했다. 크리스토퍼 부커는 이야기를 전형적인 7개의 패턴으로 묶었다.
악당을 물리치는 이야기 (다윗과 골리앗, 제임스 본드, 스타워즈)
누추한 과거와 성공 (오프라윈프리, 신데렐라, 데이비드 코퍼필드)
목적을 위한 여정 (반지의 제왕, 오디세이, SK II)
특별한 여정과 귀환 (스티브 잡스의 삶, 이상한 나라 앨리스, 백투더퓨처, 라이언킹)
코메디 (한여름 밤의 꿈, 브릿짓 존스의 다이어리, 4번의 결혼식과 1번의 장례식)
비극 (후원단체들의 광고영상에 보이는 불쌍한 아이들, 멕베스, 안나 카레니나, 로미오와 줄리엣)
다시 태어남 (개구리 왕자, 미녀와 야수, 크리스마스 캐롤, 사랑의 블랙홀)
SK II의 스토리는 3)에 해당한다. 다른 패턴으로는 SK II를 상상하기 어렵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건이 단순하고 흐름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때엔 위의 7개 패턴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수 있다. 에피소드와 해프닝이다. 시사하는 바가 뚜렷하다면 군더더기 없는 에피소드 자체만으로도 빛이 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 예시 중 <명량대첩>과 <압생뜨>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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