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순간


기록/일상 2007. 3. 31. 23:14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으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내가 12살쯤 되었을 때 어느날 아버지가 시집을 사오셨다.
윤동주, 김영랑의 시집.
어린 마음에도 뭐가 그리 좋았는지, 2권의 책에 실린 시들을
모두 암송해서 다녔더랬다.
윤동주의 '별헤는 밤'이 특히 좋았는데.. 이젠 잘 기억도 안난다.

단골꽃집에 가서
리시안샤스 반 단, 후레지아 두 단을 사서
컴퓨터 방과 피아노 위에 각각 모셔두다.

꽃집으로 가는 길,옛 동네 냄새가 나는 신수동의 골목길엔
목련이 만발한 정원이 부러움을 자아내다.

춘천의 고향집엔 자작나무와 사철나무 그리고 장미가 가득했는데,
꽃을 사서 목련집을 지나자니
문득 옛 시절 읊었던 김영랑의 시가 떠오르다.

작은 투자로 따뜻하고 기분좋은 방을 만들기엔 꽃이 좋다.
이런 짓거리 역시 누군가의 외로움을 드러내는 것 이상의
큰 의미는 없을테지.

경제적인 여건과, 미래에 동거할 사람만 찬성한다면
늘 집에 꽃을 두고 싶다-고 생각해보며..

목련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겠지...





최근 마음에 든 꽃.
리시안샤스 (꽃도라지)
영 명 : Prairie Gentian
(용담과:Eustoma grandiflorum)
학    명 : Eustoma russellianum
원 산 지 : 북미, 남미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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