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순간



트위터에 짧게 썼던 글이다. 몇 마디를 덧붙여 보았다.


"인천 공항지구에 생기는 파라다이스 카지노 & 호텔. 벌써부터 광고. 나도 프로젝트 중 하나로 끼여있음. 중국의 반한 기류를 볼 때, 중국인 수요에 대한 한국시장/정부의 장기적이고 견고한 분석이 있을지 궁금."



1. 오래 전부터 시작된 한류


회사그룹 내 홍콩이나 중국, 싱가폴에서 일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국에 대한 관심은 갑자기 생긴 게 아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했고 이제는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주류문화가 되었다. (어쩌면 십 수 년 전부터다. 내가 대학다닐 때 야후 글로벌 채팅, 음성 채팅 이런 게 있었는데 난 거기서 이미 서울의 시장이 고건이고 대통령이 김대중이라는 것까지 아는 여학생하고 친해진 적이 있다. 물론 사진을 서로 보내주고 나서는 연락이 끊겼다.) 


4월에 전세계 지부에서 모이는 회의에 참석했는데 아시아권 사람들은 이미 태양의 후예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다. 지나칠 때 우리의 인사는 "단결". 송중기, 송혜교는 기본이고 나도 잘 모르는 한국 배우 이름을 꽤고 있다.


2. 한 번 오면 끝인가


위에서 얘기 나온 사람들에 의하면 이들은 이미 네 번이나 다섯 번 한국을 방문하였고, 명동을 중심으로 해서 이태원, 홍대, 강남, 종로를 이미 다 휩쓸고 지나간 후다. 홍콩에서 럭셔리 하고 있는 40대 초반의 싱글 여성 동료는 생일 기념으로 휴가를 내고 한국에 방문한다고 했다. 


3. 트랜드가 변하고 있다


뉴스와 달리 내가 들은 것은 좀 다르다. 뉴스에서는 전세기를 타고 와서 주요 맛집이나 쇼핑 센터를 방문한다고 별 인사이트 없이 말을 하는데, 미래를 대변하는 10대, 20대들이 한국을 찾는 주요 이유 중에는 정부에서 준비한 것들은 쏙 빠져있다. 일하다가 알게 된 일명 지디카페, 제주 애월드몽상에 따르면 일 4천명이 카페를 방문하는데 이들을 통해 본 중국 젊은이들의 패턴은 이렇다.


전세기를 타고 서울로 와 빅뱅 등 연예인들이 마련한 콘서트에 1박2일 또는 2박3일 일정으로 참여한다. 그 전세기가 그대로 서울에서 제주로 관광객들을 나른다. 제주에서는 자연관광 따위는 관심없고, 이른바 간판없이 공장을 개조해 만든 카페나 부띠크형 전시관에서 사진을 찍는다. (심지어 아무것도 아닌, 플라스틱 컵이나, 컵홀더를 기념품으로 가져가거나 갖다 팔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져 수십개씩 씻어가기도 하며, 누군가는 자기가 갖고 싶으니 1000개를 하나에 1000원씩 팔라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그런 엄청난 잠재 수요가 의미하는 바를 알고 있을까?) 이는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중국 젊은이들 내에서 핫하게 뜨고 있는 제주'에서 사진을 찍어 올려야 쿨-해지는 젊은이의 특징을 반영한 세태다. 민간에서는 이런 변화들이 무서운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 한국 사람이 생각하는 제주와 중국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제주는 너무도 다르다. 


철저하게 연예인 중심, 소소잼, 셀카 중심으로 돌아가고 더 극명해 질 이런 트랜드를 모른채로 정부가 눈먼 돈을 태우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4. 돈 되는 요우커


그럼에도 돈을 쓰는/ 돈 많은 중국인들이 한국에 오는 이유 중엔 쇼핑이 있을 것이다. 여기엔, 역시 직접 들은 바에 의하면, 한국인들의 서비스 정신과 편리하면서도 고급스럽게 꾸민 공간 연출력에 큰 이유가 있다. 내 생각엔 쇼핑을 위해서 오기보다는, 거꾸로 놀기 좋아서 왔다가 쇼핑을 하고 가는 격이라고 생각한다. 아시아에서 서울만큼 신나고 다양하게 꾸민 복합몰을 가진 도시는 보지 못한 것 같다. 


신세계면세점이나 파라다이스시티 같은 곳은 대기업 자본을 꽤나 투자하였고 여기엔 '럭셔리'가 붙는다. 신세계에서는 0.0001%를 잡기 위해 중국인 큰손을 위한 별도 서비스를 제공하며, 아시아 최초로 특정 럭셔리 브랜드를 들여오는 노력 등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듣보잡일테지만) 중국 부호들을 맞기 위한 노력도 부단히 하고 있다. 역시 업계에서 들은 바는, 대부분 여성들이 돈을 쓰는데, 돈을 지불하는 것은 남성들이며, 그들은 부부보다는 연인 관계가 많다고 한다. 남성들은 기껏해야 카지노나 시계 정도를 산다고 한다. 파라다이스시티처럼 카지노와 스파가 결합된 복합몰도 이런 인사이트에 기반하고 있다.


엄청난 규모가 지어 올라가는 공항 옆 상업지구를 가보고서, 나는 한국이 갖게 된 아시아 내의 독특한 포지셔닝에 마케터로써 흥미를 갖게 되었다. 동시에 나중에 중국 관광객들이 등을 돌렸을 때에, 우리는 이 엄청난 투자결과물에 거미줄이 쳐지지 않을 것을 어떻게 장담할 수 있으며 적절한 리스크 헷지를 하고 있는가-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텅빈 마카오가 되어 간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리는데, 10년 후 텅빈 제주가, 텅빈 송도가 되었을 때를 생각하고 있는가. 


그러다가 남생각 하지 말고 너나 잘하라는 목소리가 들려서 나는 서둘러 운전대를 잡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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