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순간



나는 이렇게 남은 생을 살고 싶다.
매일 꾸준히, 그러나 조금씩.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이런저런 사정들을 남긴다.

요즘은 예전과 조금 다른 시간 체계를 통해 살고 있다. 지금 평일의 내 일상을 순전히 시간의 흐름대로 구성하면 대략 이렇다.

06시- 기상, 식사 (집)
07시- 경제주간지, 독서 (지하철)
08시- 회사일, 산책, 식사, 인터넷서핑, 인터넷신문,...이밖에 수많은 일이 벌어진다 (회사)
18시- 독서 (지하철)
-20:00 간단한 저녁 (집)
-20:40 뛰기 (운동장 트랙)

-21:00 씻기 (집)
-21:20 기타연습 (골방)
-21:40 영어 (골방)
-22:00 스트레칭
-23:00 독서 또는 가족과 놀기 (안방)



이런 시간표는 약 2월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전의 시간 구성과 가장 다른 점은 바로 시간 쪼개기다. 이전의 시간표는 퇴근 이후에 거의 비어 있다고 보면 되겠다 (그래도 독서는 꾸준히 해온 자산)

내게 필요한 여러가지 목록을 적는 일을 나는 좋아한다. 내 다이어리에는 수년전의 해야할 일 목록들도 빼곡하고 요즘은 에버노트라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일기와 할일, 그리고 하고싶은 일을 계속 업데이트하고 있다. 문제는 적고 실행하지 않는 일들도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퇴근 후부터 잠들기 전까지로 제한되어 있었다. 가끔 술자리를 하거나 몸이 좋지 않다거나 가족과 함께 해야 할 시간이 있으므로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보이는 것보다 확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시간 쪼개기를 시도했다. 시간 쪼개기란 50분 일하고 10분 휴식한다는 대학교와 군대의 고정관념을 과감히 깬 시간 활용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50분 동안 "낮은" 집중력과 "길고 지루한" 시간으로 인한 비효율성으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대신, 10분이라도 짧고 굵게 활용하는 것이다. 위의 시간표에서 20분 내외의 시간단위로 쪼개진 퇴근 후의 시간표가 바로 시간 쪼개기의 예라고 볼 수 있겠다.


시간 쪼개기의 장점


시간을 15분 내지는 20분 단위로 쪼개서 사용하니 하루를 굉장히 알차게 보낸다는 만족감을 얻었다. 또한 스스로 20분이라고 정하면, 더 재미가 있어도 가능하면 중간에 그만두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중간에 흥이 나서 30분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는 단점이라기 보다는 장점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한 마디로 Do more with less가 딱 맞는 말이다.

또 다른 장점은 매우 집중적으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운동은 그때마다 다르지만 (지하철 출근 시간에 오늘의 계획을 짠다) 평균적으로 약 30분을 잡는다. 그러면 퇴근하자마자 30분을 맞추기 위해 애를 쓴다. 1분이라도 허투루 쓰면 활용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30분을 꽉 채워 알차게 쓰는게 목표다. 옷을 재빨리 갈아입고 현관문을 나서면서 시계를 본다. 그리고 30분동안 최대한 빨리 운동장으로 뛰어가서 스트레칭도 빨리하고 조깅도 가능하면 속도를 높인다. 그리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30분을 맞추기 위해 굉장히 강도 있게 운동을 한다.

내가 만약 운동 시간을 1시간으로 잡았다면 천천히 걸어나가서 대충 시간을 때우거나 시간이 가지 않는 것에 대해 지루해할 지도 모르겠다. 영어공부나 기사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설정한 Dead line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더 집중적으로 하게 된다.

쉽게 얘기하면 씻을 때도 열심히 씻고, 밥도 열심히 먹고, 공부도 눈을 부릅뜨고 집중한다. 가족과 놀 때엔 눈만 쳐다 보면서 실컷 웃어줄 만큼 집중한다. 확실히 활기찬 내 자신이 기분 좋다. 문제는 이 모든 일정을 소화하면 기분 좋은 피곤이 밀려와 바로 골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시간 쪼개기의 전제


시간을 이렇게 미세하게 쪼개서 관리하려면 전제가 두 가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번째는 '작지만 조금씩 꾸준히 가는 것'에 대해 스스로 인지하고 인정하는 일이다. 최근 깨달은 것 중에 가장 무서운 게 '꾸준함'이다. 오죽하면 고등학교 때 공부는 머리가 하는 게 아니라 엉덩이가 한다고들 하던데, 이것도 맞는 말이다.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도 이를 잘 보여준다. 매일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한다는 것은 웬만한 의지가 있는 사람은 하기 힘든일이다. 그러나 이를 실행했을 때엔 상상을 현실로 만들 만큼의 거대한 변화가 온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실력이 늘겠어'라고 의심하는 사람에게는 시간 쪼개기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 사실을 몸소 깨달았고 절대적으로 신봉한다. 그래서 시간 쪼개기를 통해 매일 꾸준히 스스로를 단련하려 한다.

두번째는 정말로 꾸준히 해야 한다는 점, 바로 실행력이다. 꾸준하지 못하게 15분씩 매일 다른 item을 연습 한다면 '누적의 효과'를 전혀 기대할 수 없다. 같은 아이템을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그야 말로 일주일에 몇번이라도 꾸준히 해줘야만 어느날 문득 놀랍게 발전한 실력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매일 꾸준히, 그러나 조금씩'은 우주의 법칙이기도 하다. 

자식 보는 부모님들이 '아이구 이 놈이 언제 이렇게 컸누'할 때에...
씨뿌린 화분에서 팔뚝만한 줄기가 올라와 있을 때에...
너무 좋아서 즐겨듣던 노래의 가삿말을 자기도 모르게 외워버렸을 때에...
빡빡 깎은 머리가 어느새 덥수룩하게 자랐을 때에...
처음 만나서 어색했던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에...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되었을 때에, 그리고 다시 흐르는 물이 되었을 때에...
매일 밤 야식으로 인해 몸무게가 3kg 늘었을 때에...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때에...
태어나서, 늙어가는 것... 죽음...



매일 조금씩 변화하는 것의 위력을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초고속카메라로 촬영하지 않는 이상 인간의 인지능력으로는 도저히 구별할 수 없는 경지는 바로 '매일 꾸준히, 그러나 조금씩'에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에도 은근한 아궁이에 불 지피듯이 사랑하자. '한꺼번에 많이'가 현대인의 병이자 인간 탐욕의 근원이다. 


내 시간표의 풀어야 할 숙제


퇴근후의 내 일상에 대해서, 시간 쪼개기를 통해 약 4개월을 보냈다. 나는 아주 만족스럽다. 그러나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면 회사에서의 시간표이다. 회사 시간표는 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아닌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일이라는 게 늘 눈코뜰 새 없이 돌아가는 것만은 아니어서, 업계의 현황이나 실물경제 트랜드에 대해 인터넷 서핑을 할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도 있다. 회사에는 미안한 말일 수 있겠지만 바쁘지 않을 때 회사 내에서도 일정 시간을 쪼개서 내 공부에 투자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회사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을지도 아직은 분간하기 힘들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이런 활동은 시간을 쪼개서 주도적으로 한다기 보다는 짬이 날 때 틈틈이 한다고 보는 게 맞을까..

시간 쪼개기를 하면서 변화하는 내 자신을 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시간이 쪼개기엔 모자란다. 더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긍정적인 인식도 훌륭하 성과 중 하나다. 



*시간 쪼개기의 영감은 블로거이자 <한 권으로 끝내는 뉴욕취업>의 저자이신 이정희 님으로부터 스파크되었음을 밝힌다.
*'매일 꾸준히, 그러나 조금씩'은 어디서 따온 말이 아니라 그냥 여기에 쓰다보니 입에 붙는 운율이라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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