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순간



아직도 가야 할 길 The road less traveled, Morgan Scott Peck, 율리시스 출판, 2011 (초판 1978, 미국)

0. 서문

 

 

책을 깨끗하게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다 읽고 나니 꽤 많은 페이지의 귀퉁이가 접혀 있다. 500 페이지인 책의 부피가 갑절은 불어난 듯하다. 낙서처럼 썩 좋아 보이지 않는 연필 메모가 많다. 밑줄이 여기저기 정갈하지 못하게 그어져 있다. 형광색 펜으로 그은 밑줄, 볼펜으로 그은 밑줄, 연필로 그은 밑줄은 내 마음이 어디서 얼만큼 움직였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책을 깨끗하게 보고 싶다는 마음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책들과 달리 왜 이 책이 누더기가에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감 Inspiration, 격려 Encourage. 이 책은 더 힘내라고 옆에서 박수를 쳐주는 든든한 존재처럼 우리를 격려하는 책이다. 조금만 더 노력해보라고, 할 수 있으니 힘내라고 격려를 하고 그 노력을 위한 영감을 주는 책이다.

 

영감과 격려, 긍정적 에너지를 불러오는 말이다. 똑 같은 일을 겪어도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기호일 수도 있고 노력의 산물일 수도 있다. 어떤 일에서 논리적 핑계를 대는 주체는 이성이겠지만, 결정을 내리고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은 늘 감정이다. 감정의 동물인 사람인 이상 늘 긍정적일 수는 없다. 그러나 크게 보았을 때에 주된 에너지의 흐름을 긍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긍정적인 언행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낳고, 긍정적인 에너지는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선순환의 목적에 대해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뭔가를 성취하기 위해서, 행복을 위해서, 심리적 평화를 위해서? 그에 대한 대답과 함께 심지어 더 혼란스런 (그러나 결국 성장으로 이끄는) 질문까지 던지는 책이 바로 아직도 가야 할 길이다.

 

심리치료사, 흔한 말로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많은 정신질환자를 상담하는 과정을 통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게 뭔지 인생에서 가져야 할 태도 중의 백미를 독자에게 소개한다. 그 방법은 다소 부담스럽고 꺼림칙하다. 가족과 친하게 지내라거나 건전한 취미를 가지라는 식의 속 편한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 자신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이다.

 


1. 훈육
: 도망가지 말고 고통에 맞서라

 

삶은 고통과 문제의 연속이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고통과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도망가거나 회피한다. 시간이 지나면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문제와 고통으로부터 자꾸만 도망가는 이유는 바로 두려움이다. 낡은 지도를 버리고 새로운 지도를 쓰기 위해서는 자신의 많은 부분을 버리고, 포기하고, 때로는 대면하기 싫은 자신의 무지와 상처를 인정하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성장은 필수적으로 고통을 수반하는데, 고통을 피하려 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퇴행이다. 칼 융은 신경증(노이로제)이란 마땅히 겪어야 할 고통을 회피한 결과다.”라는 말로 이를 간결하게 표현한다. 퇴행은 퇴행을 불러오는 악순환의 첫 단추이다.

 

이를 꽉 다물고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과 정면으로 싸우지 않으면!

고통이라는 놈의 무서운 두 눈을 앙칼지게 응시하지 않으면!

게으름으로 변장해 있는 두려움을 떨쳐내지 않으면!

자신의 따끔거리는 상처에 소독약을 바를 용기를 안 내면!

더 크고 자유로운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는 의지를 품지 않으면!

이 모든 자신의 무지와 상처에 대해 두려움을 떨쳐내지 않으면!

다소 유치하지만 나만의 언어로 풀어낸 '두려움과 게으름을 타파하여 고통에 맞서자'는 내용이다.


지도를 수정하는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 특히 대대적인 수정은 더욱 고통스럽다. 우리는 계속 해서 낡음(고통)을 직시해야 하고 그 고통을 참고 이겨냄으로써 새로운 지도를 갖고 있어야 한다. 저자는 상담과정에서 만났던 정신질환자의 사례를 들어, 낡은 지도를 버리지 않으려고 할수록 더욱 악화되는 상태에 대해 묘사해준다. 반대로 그 고통을 직시하고 용기를 내어 두려움을 몰아냈을 때에, 그래서 새로운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을 때에 환자들이 얼만큼 자유로워지고 성숙해졌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계속 격려하고 있다.

 

계속해서 새로운 지도를 쓴다는 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지속해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지도를 새로 고치는 일에 익숙해질수록 고통에 대처하는 우리의 태도도 능숙해질 것이다. 이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영적 성장이며, 이렇게 지도를 수정하고 그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는 과정이 바로 평생을 지속해야 할 훈육 discipline’ 이다.

성장의 과정은 대체로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여러 번의 작은 도약들로 이루어지며 아주 점진적으로 일어난다.

 

2. 내가 맞서야 할 고통

 

저자가 이야기한 고통은 여러가지다. 노력하지 않는 게으름을 이겨내기 위해 고통은 수반된다. 현실에서 자기가 얼마나 게을렀는지, 얼마나 변하기 싫어했는지, 그걸 억지로 합리화 하며 덮고 있는 내 자신을 똑바로 보는 고통은 클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고통이란 자신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착각을 깨부수는 일이다. 내가 왜 그 고통을 회피하려 하는지 내 무의식의 내면세계를 째려보는 일이다. 정신병임상학자이자 상담치료사인 저자의 핵심은 그것이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며 내가 본능적으로 피하게 되는 몇 가지 상황들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그걸 굳이 끄집어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꾸 도망가려는 무의식을 째려보고 고통을 느끼고 그리고 그걸 극복해야 더 큰 지도를 써나갈 수 있다.


3. 사랑: 라면과 구공탄의 메타포처럼

 


저자가 내린 사랑의 정의는 이렇다
.

사랑이란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영적 성장을 도울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다.

이처럼 멋진 사랑의 정의는 본 일이 없다
.


 
다소 밋밋하긴 하지만 나는 앞으로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하리라 생각하기로 했다.

 

수 많은 사례를 통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랑의 속성인 느낌, 낭만, 애착, 의존, 자기희생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이 영적 성장을 이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오히려 서로에 대한 책임감, 시간과 에너지의 투자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매우 감동깊게 배운 내용인데 주석을 꼭 참고하시면 좋겠다 [각주:1]), 상실 독립 분리에 대한 이해와 수용, 헌신 그리고 훈육이라고 말한다. 사랑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므로 정독을 추천한다.

 

저자가 정의한 대로 말하자면, 서로의 영적 성장을 돕는 일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 역시 훈육을 통해 이루어진다. 또한 사랑한다면 응당 영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비교하자면 라면과 구공탄처럼, 아니 그보다 조금 더 필수불가결한 관계의 은유로서, 훈육이라는 성장의 과정에서 사랑이 꼭 필요하며, 사랑을 위해서도 훈육이라는 노력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나 자신 안에 그를 위한 공간을 만들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 자리를 만드는 것이 바로 괄호로 묶기 라는 훈육이며 그를 위해서는 자신의 확대와 결국에는 자기 변화가 필요하다. -214p


 


4. 성장과 종교
, 그리고 은총

 

사랑자체는 어디서 오는가, 사랑 없이도 건강한 정신으로 잘 사는 사람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러한 미스터리에 대해 저자는 기적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수많은 환자들의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성장과정을 지켜보았을 때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기적들은 하느님이라는 존재를 가정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진화와 은총의 기적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가 성숙하기를 바라는 하느님의 존재를 가정할 수 있다.


 

하느님이 바라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과 같아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경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하느님이 곧 진화의 목적이다.


 

저자는 무의식을 겉으로 드러난 의식이라는 작은 식물에 영양을 공급하는 땅속줄기나 또는 믿을 수 없이 크고 풍성한 숨겨진 뿌리 같은 것으로 여겨 달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집단 무의식이 바로 하느님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제야 문제의 핵심에 도달했다. 그것은 의식을 지닌 채로 하느님의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무의식의 하느님이라는 뿌리에서 자라난 의식의 새싹이 하느님 그 자체로 성장할 수 있다면 하느님은 전혀 새로운 삶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이것이 인간 개체의 존재 이유다. 우리는 의식을 지닌 개인으로서 새로운 방식의 삶을 사는 신이 되고자 태어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의 대리자요, 그 분의 오른 팔이요, 그분의 일부가 될 것이다.


 


5. 인격신에 대한 논리적 오류

 

총 4부 중 3부인 종교와 4부인 은총이 전개되는 부분에서 많은 독자들이 책 읽는 속도를 늦추거나 몇 명은 포기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갑작스러운 사실은 어쩔 수 없다. 위키피디아에서도 이 부분 때문에 이슈가 있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Random House, where the little-known psychiatrist first tried to publish his original manuscript, turned him down, saying the final section was "too Christ-y." http://en.wikipedia.org/wiki/M._Scott_Peck

 

저자가 하느님을 가정할 수밖에 없다는 근거로서 예시한 진화[각주:2]와 기적[각주:3]은 당시에는 참신했을지 모르나 이미 논리적으로는 설득력이 없음이 증명되었다.

 

첫째 진화가 자연의 법칙에 어긋난다는 주장은 다윈의 진화론이나 멘델의 법칙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견해일 뿐 그 자체가 객관적인 사실은 아니다. <만들어진 신>의 저자인 리차드 도킨슨[각주:4]이 주장했듯이 인간과 같이 고등생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창조론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해당 주장의 정리 블로그)[각주:5]. 인본원리로서 리차드 도킨슨은 그저 진화론의 산물로서 인간이 존재하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것이 꼭 창조되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둘째, 만약 신을 가정한다고 해도 그 신이 하느님일 이유는 없으며, 인격신(사람과 같은 신)일 근거는 전혀 없다. 따라서 우리 인간을 그 분과 닮게 만들었고, 그것이 우리 인간의 영적 성장의 최종 목표라는 말은 다소 성급한 논리적 비약이 아닐 수 없다.

 

은총과 하느님에 대한 저자의 논증적 접근은 그 근거가 빈약하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논증이 내게는 매우 숨가쁘고 조급한 것처럼 보였다. 논리와 가정이 아니라 그 부분을 믿음에 대한 흐름으로 대체한다면 어땠을까 싶다. 증명하기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인 후반부는 책의 완성도를 떨어뜨렸다고 생각한다. 몇몇 독자는 마치 세일즈맨의 의도에 휘말린 것 같은 유쾌하지 못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저자의 의도에 대해 회의적이라거나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훼손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가톨릭 신자이며, 성인이 된 이후에 개인적인 영적인 체험을 겪고 나서 스스로 가톨릭에 입교했다. 그 누구보다 하느님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부정적이었고 비판적이었다. 대학 시절엔 프로이트와 들뢰즈, 라깡에 깊이 빠졌으며 졸업 논문에도 그들의 이름이 선명할 정도로 정신 분석학에 관심이 많았다. 젊은 날엔 독이 될 수도 있는 그 무서운 칼날을 경솔하게 휘둘러서 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내 개인사를 밝히는 이유는 이렇다.

 

나는 그가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에 100% 동의한다. 고백하건대, 떠들고 다니지는 않지만 내적으로는 내 자신이 하느님의 도구로서 훌륭하게 쓰여지는 것이 최고의 영광이라고 생각하며, 그 영적 성장을 위해 나와 이웃을 사랑하고 훈육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나와 같지 않은 세계관, 종교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의 주장에 동의하기 쉽지 않았을 거라는 의미에서 반론을 펼쳐 보았다.

 

나는 여전히 생각한다. 그가 세상을 더 사랑해서 사람들의 영적 성장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을 고심하고 있었다면, 종교적 접근이나 냄새는 최대한 배제시키는 방법을 썼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가 책에서 쓴 내용은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는 조언과 충고도 매우 사려깊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으므로 독자들에게도 더 사려깊은 방식이었으면 어땠을까.

 


6. 결론: 긍정적인 에너지의 힘

 

위에서 언급한 아쉬웠던 부분에 대해 내게 기회가 허락한다면 나는 이렇게 바꿔서 설명하고 싶다. 서두에 썼던 글을 다시 한번 그대로 옮긴다.

 

영감과 격려, 긍정적 에너지를 불러오는 말이다. 똑 같은 일을 겪어도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기호일 수도 있고 노력의 산물일 수도 있다. 어떤 일에서 논리적 핑계를 대는 주체는 이성이겠지만, 결정을 내리고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은 늘 감정이다. 감정의 동물인 사람인 이상 늘 긍정적일 수는 없다. 그러나 크게 보았을 때에 주된 에너지의 흐름을 긍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긍정적인 언행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낳고, 긍정적인 에너지는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선순환의 목적에 대해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뭔가를 성취하기 위해서, 행복을 위해서, 심리적 평화를 위해서? 그에 대한 대답과 함께 심지어 더 혼란스런 질문까지 던지는 책이 바로 아직도 가야 할 길이다.

 

이 책은 격려하는 글이다. 우리가 두려움을 떨쳐내고, 고통스러워서 두 번 다시 들춰보고 싶지 않은 상처에 대해, 괜찮다고, 그래야 새살이 돋고 더 성숙해지는 거라고 격려하며 일으켜주는 메시지다.

 

이 책은 영감을 주는 글이다. 영감이란 아무 것도 없는 무의 경지에서 새로운 창조의 씨앗을 던져주는 에너지. 저자는 그 에너지를 기적이라고 표현했고, 그 기적은 은총이라고 여겼으며, 그 은총은 무의식이라는 옷을 입고 나타난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선순환을 만들어 내는 이 긍정적인 에너지는, 이름을 붙일 수는 없지만 굉장히 긍정적이고 때로는 기적을 이뤄내는 에너지이다. 이 에너지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다시 불러 들인다. 이 긍정의 에너지는 때로 사랑으로 나타나고 때로는 기적으로 나타나고 때로는 치유와 환희로 나타나기도 한다. 노자가 말한 道와 비슷하지만, 긍정적인 에너지에는 그와 반대되는 부정적인 에너지도 있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다. 부정적인 에너지는 그런 에너지를 또 불러모은다. 그렇게 되면 악순환이다.

 

적합하게 설명했는지 모르겠지만 쉽게 얘기하면 The secret, The power에서의 핵심 내용과 비슷하다. 다만 M. 스캇 펙이 사용한 하느님이라는 개념을 The power에 적힌 사랑 또는 일반적인 개념의 에너지로 바꾸면 책 전체의 흐름이 더 부드럽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이겨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두려움으로 포장된 게으름을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사랑을 통해 이 훈육은 더욱 힘을 낼 수 있다. 때로는 이러한 힘” (446p)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에 의해 기적을 낳는 것처럼 보인다. 이 에너지는 저자의 표현대로 하면 하느님의 은총이며, 내가 다시 고쳐 쓴다면 어디서 불어오는 지 알 수 없는 바람처럼 그저 정체를 알 수 없는, 하지만 우주의 원리 중 하나인 긍정적인 에너지이다.

"매사에 긍정적인 희망을 갖는 일"이 "긍정적 에너지"의 흐름을 만든다면,
이 책에서 격려하듯이 "매사에서 두려움을 직시하여 게으름을 타파하는 일"이 진취적인 에너지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초석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7. 요약

 

너무도 흔한 말이 되었지만, 앞으로의 내 자신에게 말하건데,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즐겼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살아본 바로는 참을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은 없었다. 모든 고통은 참을 만 했고 그 고통은 나를 성장시켜주었다. 내가 피한 고통은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다만 두려워서 게을리 했을 뿐이다
.

10년 후 잘 기억이 안 날 내 자신에게 말하는 이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화두이자 키워드를 정리해본다.

1. 게으름이라는 놈을 극복하는 고통이 큰 지도를 그리게 한다.
2. 자꾸 피하려고 하는 무의식을 '왜 내가 피하고 있을까'라고 정면으로 맞서고 그 이유를 찾는 과정은 너무도 고통스럽고 두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깨지 않는 이상, 옛지도를 버리지 않는 이상, 영적으로 더 성숙한 삶은 기대할 수 없다.
3. 사랑이라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통해 영적 성장은 가속되고 촉진된다. 

이 서평은 낡은 지도 뒤에 숨어서 고통을 피하려 할 지도 모르는 미래의 내게 용기를 북돋워 줄 요량으로 쓰여졌습니다. 해석에서는 다른 독자와 차이가 있을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인격신의 오류-에 대한 지적은 글 전체의 핵심을 방해한 듯한 느낌이 들지만 꼭 짚고 싶었습니다.

- 이 책은 Filldream Book Club에서 선정한 도서입니다. 권유하고 격려해주신 Filldream 님께 감사드립니다.




기타 위의 내용에 언급되지 않았지만 마음을 움직인 글귀들.

 

 




  1. 진심으로 들어주고 다른 사람에게 온전하게 집중하는 것은 언제나 사랑의 표현이다. 진심으로 듣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는 괄호로 묶는 훈련이다. 그것은 가능한 한 말하는 사람의 내면세계를 그의 입장이 돼서 경험하기 위해, 자신의 편견, 판단 기준, 욕구들을 일시적으로 포기하거나 제쳐두는 것을 말한다.네 살 아이를 해변에 앉아 지켜보는 것, 여섯 살 아이의 밑도 끝도 없는 얘기를 집중해서 들어주는 것, 십대 아이에게 운전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 배우자가 사무실이나 세탁방에서 있었던 그 날 일을 이야기할 때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 꾸준히 인내심을 발휘하고 가능한 한 많은 것들을 괄호로 묶어두려고 하면서 배우자 내면의 문제를 이해하는 것, 이모든 것들은 때로 지루하며 대체로 불편하며 언제나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그것은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좀 더 게으르면 우리는 그것을 전혀 이행하지 않을 것이다. 좀 덜 게으르면 그것들을 더 자주하거나 더 잘 이행할 것이다. [본문으로]
  2. 진화는 열역학2법칙에 의해 엔트로피를 거스르므로 자연의 법칙에 어긋난다는 주장임 [본문으로]
  3. 하느님이 없고서야 이러한 기적이 가능하겠는가라는 가정에서 출발했다고 써있음 [본문으로]
  4. http://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EB%A6%AC%EC%B2%98%EB%93%9C+%EB%8F%84%ED%82%A8%EC%8A%A4 [본문으로]
  5. http://alankang.tistory.com/76 [본문으로]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