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순간



Say, 어느날 Roll's heaven이라는 퓨전 레스토랑이 탄생한다. 


검은색과 보라색을 환상적으로 믹스한 세련된 인테리어와 이태리산 가구를 활용한 공간배치, 최고의 location (이태원점, 강남점, 압구정점 3개로 출발했다 치자), 그리고 음식맛도 최고이며 그 fusion idea 역시 저질 (i.g. 아웃백 릴 그립을 곁들인, 스위스산 브리 치즈와 일본 도치키 현의 다쿠왕 그리고 신안의 천연소금을 사용한 최고급 김밥)을 넘어선 남산 그랜드 하얏트의 전 수석 쉐프가 개발해 낸 월간 Cook에 까지 실린 최고급 메뉴다. 가격 역시 이에 걸맞는 프리미엄 급으로 사랑하는 남녀가, 자기를 소개시켜준 이에게 답례라도 할라치면 최소 이십 만원은 있어야 하겠다.

음식맛도 최고, 인테리어도 최고, 스토리텔링도 프리미엄, 가격도 프리미엄, location도 훌륭하다.

그런데 이 Roll's heaven은, 하나 비밀이 있는데..
이 Roll's heaven 1호점이 오픈하기 1년전 김밥천국의 매니지먼트와 마케터들은 사업확장을 위한 라인 익스탠션을 결심한다. 이름은 대략 <Roll's heaven>. 만약 김밥천국에서 파생된 걸 모르고 읽는다면 깨나 멋진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퓨전 레스토랑일 수 있다. 



SM5가 '프리미엄'을 느껴보라고 광고하지만 사실 SM5를 프리미엄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준중형급 중에 그나마 중형급을 따라했다는 표현 정도로 이해하게 되겠다. 현대는 제네시스를 출시냈지만 현대라는 연상작용이 있는 한 제네시스는 수퍼 프리미엄이 될 수 없다. '그나마 프리미엄 같은..'이 되겠다. 렉서스가 발매 초기 도요타임을 끝내 숨겼다는 일화가 이야기해주듯이,
 
마케팅은 과학이 아니라 인문학이나 심리학에 가깝다.
마케팅은 제품에 대한 경쟁이 아니라, 인식에 대한 경쟁이다.



(전적으로 내 생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는 Al Ries가 그의 책에서 지속적으로 하는 말이기도 하고, 최근 세스 고딘이나 기타 '제 2의 르네상스'나 '포스트 포스트 모더니즘'을 부르짖으며 인간의 비합리성을 오픈하는 많은 작가들의 말이기도 하다.)

제 아무리 훌륭한 제품이라도, '훌륭할 것 같다'나 '훌륭한 것 같다'는 인식보다 위에 있을 수는 없다.

결론: Roll's heaven은 성공할 수 없다. 김밥천국과 Roll's heaven은 어울릴 수 없는 궁합이요, 말하자면 불과 나무요, 기름과 불이다. 사람들은 이 훌륭한 퓨전 레스토랑을 보며 고등학교 때에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가 부담없이 라볶이와 1,000원 짜리 김밥과 2,500원 짜리 쫄면을 중국산 배추김치와 즐기던 김밥천국을 떠올릴 것이다. Roll's heaven이 그 어떤 훌륭한 메뉴를 내놓아도, 버락 오바마가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점이 바로 Roll's heaven이다."라고 하지 않는 이상 한국인들은 그 인식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만약 Roll's heaven이 미국에서 오픈한다는 얘기는 다를 것이다. 미국인들은 김밥천국에 대한 frame of reference가 없으므로.



이 재미있는 생각이 다소 뻔한 얘기로 느낄 수도 있지만, 오늘 날에도 많은 마케팅 필드에서 이런 일이 벌어나고 있고 많은 회사들이 이런 식으로 망해가고 있다.

이런 상황이 온다면 인식상 수용하고 구매하거나, 혹은 지지할 수 있는가? acceptable?

베이징 배추노동조합에서 최고급 배추김치를 맛좋게 런칭한다면 (실제로 맛이 좋다해도,)
신정환이 불우아동을 위한 무상급식 서명운동을 한다면 (큭,)
XX유업이 모유보다 영양소가 풍부한 분유를 개발한다면 (실제로 영양소가 높다고 한다해도,)
현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수도자의 길을 택한다면 (진짜로 그가 그런 마음을 가진다고 해도,)
한국인삼공사에서 <정관장>의 익스탠션으로 스타벅스보다 비싸고 맛 좋은 커피를 개발한다면 (실제로 맛이 좋다고 해도,)
여명808 브랜드 익스탠션의 일환으로 여명808 치즈 컵케익을 낸다면 (맛은 W호텔 베이커리보다 훌륭하다해도,)
심형래가 Black swan 같은 심리-자아 영화의 메가폰을 맡는다면 (감정이입할 수 있겠는가,)
현주컴퓨터가 부활하여 아이패드를 뛰어넘는 테블렛 PC를 만든다면 (음,)
동대문 피혁공장조합이 루이비통보다 질 좋은 가죽으로, 그러나 루이비통보다 절반가격에 브랜드를 런칭한다면 (가죽은 120% 좋다 해도,)
며칠 전 나온 '재밌는' 신제품 뉴스: ○…빙그레가 프리미엄 차음료 ‘아카페라 티(a cafe la Tea)’를 출시했다. 빙그레의 프리미엄 커피음료 브랜드 아카페라가 선보이는 차음료 아카페라 티는 최상급 차(茶)만을 사용하여 고급스러운 맛과 깊은 향이 특징. 로열밀크티와 녹차라떼 두 종류다.
  - 빙그레는 프리미엄을 풍길 수 있나. 빙그레가 가진 프리미엄이 단 하나라도 있나.
  - 아카페라는 프리미엄 커피음료였나. 시중에서 가장 싼 price level과 저급 포장디자인으로 프리미엄을 표방했나?
  - 아카페라는 커피 포지셔닝 된 브랜드인가. 차음료로 확장할만큼?
  
 


인식은 편견에서 시작하고,
그 편견을 지배하고 조정하는 마케터가 승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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