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순간





POWER UP - HOT6


레드불

2008년부터 1년에 한번 씩 일본 출장이 있었다. 그때마다 일본의 시장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본시장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장기 침체를 겪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적인 경제 대국이다. 그에 따른 시장의 성숙도 역시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르익었다고 생각한다.

외국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Red Bull에 대해서 들어봤을 것이다.

if 탄산음료=콜라=코카콜라 , then 스포츠음료=게토레이, and
에너지음료=레드불

이 정도의 공식이 성립하지 않을까 싶다. (딜리버링 해피니스
[마케팅.Entrepreneur] - 딜리버링 해피니스 Delivering happiness 서평 기록에서도 레드불은 둘도 없는 저자의 친구라고 표현한다.)


한 마디로 레드불은 에너지음료 카테고리의 대표적인 브랜드이고 그에 따른 마케팅 전략 역시 굉장히 뚜렷하고 흔들림이 없다. 마케팅 Guru들이 말하는 "Narrow the focus"의 본보기다. 그들은 하나의 메시지에 집중하고, 쓸데 없는 Marketing vehicles 대신 F1같은 특정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한다. 그 흔한 라인익스텐션의 오류에서도 줏대가 있는 편이다. (물론 레드불스 콜라가 나왔다가 큰 코 다치긴 했지만)

그런 레드불이 일본에서 자리를 잡은 건 불과 1-2년 전이다. 한국은 아직 식약청과의 문제가 있어 수입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조만간 한국시장도 어떻게든 뚫리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 글을 수정하는 2011년 8월 현재, 레드불의 국내 판매는 거의 초읽기 단계다.)

핫식스

그러던 찰라 2010년에 롯데칠성음료에서 HOT6라는 브랜드를 선보였다. SKU는 다행히 하나다. 알만한 사람만 알게 공개된 핫식스의 정보는 마케터들에겐 재미있는 관전거리를 제공해주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에너지 시장이 도래하는가?

만약 한국에서 에너지 시장이 형성된다면 핫식스가 카테고리 리더가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핫식스의 배경에는 레드불이라는 거대한 브랜드에 대한 레퍼런스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미국에서도 가장 큰 에너지 음료 브랜드인 Monster, Doubleshot +Energy라는 브랜드가 판을 치고 있다. 핫식스팀은 이러한 세계적인 변화추세를 데이터로 준비하면서 동시에 가장 가까운 선진 시장이자, 종종 아이디어를 차용해오기도 하는 일본 시장의 레드불 정착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바로 지금이야! 한국에도 에너지 시장이 곧 도래할 것이다.

핫식스에서는 막연한 믿음 외에 각종 시장조사를 시행했을 것이다. 소비자 대담 (FGI)과 제품 테스트 (CLT, CPT)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핫식스는 과연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소비자들은 이미 준비되었다 - 였을까, 아니면 소비자들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지만 때를 놓쳐서는 안된다 - 였을까.

결론적으로, (발매 1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보자면) 성공은 아니다.

그 사이 해태, 오츠카 등에서 에너지 음료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지만 핵심 판매채널인 편의점에 입점 성공한 것은 핫식스 하나였다. 나머지 풀 스로틀, 에네르기 등의 브랜드들은 참으로 요란하고 멋진 디자인이었지만 공허한 메시지와 열악한 유통력 때문인지, 시골 수퍼에서만 몇 번 볼 수 있었다. (박카스와 동일한 포지셔닝이 되어 버린 듯)

핫식스가 사용한 마케팅 전략은 핵심만 말하자면 이거였다.

젊은이들이 뭔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나를 Up시켜주는 무엇!
기능적으론 뭔지 잘 모르겠지만 힘이 나는 무엇!
뭔가 섹시한 그 무엇!


아래 핫식스의 블로그에 가보면 실제로 Heaven에서 진행한 파티 등이 나와있다. http://bit.ly/hBqbvc 핫식스가 HOT SEX를 뜻하는 게 아니냐는 물음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회피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성인이라면 그 정도 선에서 알아 들을 수 있었다. (과연 섹시한 언니들이 클럽파티에 많이 온 것으로 보인다. 알바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들의 적절한 마케팅 믹스가 괜찮았다고 본다. ATL로는 TV광고를 통해 viral을 창조하기에 충분했으며 BTL로는 어리고 잘 나가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 그들의 Tone&Manner를 잘 전파했다.


그런데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


개인적으로는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1. 불명확한 메시지

만약 이것이 레드불을 Frame of reference로 만든 것이라면, 소비자가 핫식스를 사게 되는 TPO가 언제일까?

내가 본 광고에 따르면 핫식스는 '이성에 대한 흥분'이라는 메시지로 전달되었다. 그렇다면 이성과 데이트를 할때 먹을까? 아니면 뭔가 더 육체적인 것을 할 때에? 광고와 컨셉은 충분히 재미있었으나 구매로 연결되는 포인트는 없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이해는 된다. 뭔가 젊은 사람들이 신나게 놀 때에, 힘이 필요할 때에 마시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레드불이 아직 들어오기 전에, frame of reference가 없는 이 마당에, 소비자는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아직 '모를 뿐'이다. 레드불은 다각도의 에너지를 접근해서 결국 정력이라는 의미까지도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에게 주입했다. 실제 외국의 TV광고 등에는 알게 모르게 레드불을 섹시로 포지셔닝하려는 의도도 볼 수 있다.

레드불이 온갖 Xsports를 후원하며 구매와의 연관을 지은 반면, 핫식스는 정력보강제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Bridge가 없이 단 번에 소비자의 입에 밥을 마구 넣으려고 한 것이다.
 


2. 한국인에게 에너지란 무엇인가

핫식스를 떠올리면? 섹시한 여자가 떠오른다 - 말초적인 '육체'
레드불을 떠올리면? 강렬한 스포츠가 떠오른다 - Bold한 '정신'

서양에서는 카페인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인은 카페인을 몹시도 꺼린다. 레드불은 주로 카페인 음료다.

따라서 서양에서는 카페인을 (주로 과라나라고 하는 식물의 추출물) 통해 energy boosting을 한다. 그게 곧 에너지다. 반면 한국에서의 에너지는 무엇일까. 주로 정력, 스테미나와 관련된다.
한국인에겐 카페인을 통한 각성은 뭔가 좋지 못한 Perception이다. 이 인식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핫식스는 한국인의 이러한 인식을 바로 잘 연결지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뭔가 표리부동하다. 알 수 없는 Reason to believe를 통해 에너지 즉 우리말로 '정력'을 보강하라니. 이게 무슨 망칙한 설득이란 말인가. 우리에겐 박카스와 홍삼, 마늘 (남자한테 너무 좋은데 말로 할수는 없다는)이 있는데, 넌 뭔데?

한국인의 소비를 잘 읽고 활용했지만 결국엔 소비자가 구매하지는 않는 난처한 꼴이 되어 버렸다.

Al Ries 등의 저자에 의하면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수백년이 지나서 거대 MIME 자체가 바뀐다면 모를까.
 


3. 에너지 시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핫식스는 참으로 선도적이었다. 시장의 개척자는 늘 고달프고 외롭다. 경쟁자도 없다. 예산도 많이 든다. 소비자도 잘 모른다. 그러기에 혁신적인 제품은 성공하면 대박이다. 그 카테고리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핫식스의 실패는 여기에 가장 큰 원인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려고 하는 게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의 연장으로 볼 때에, 나는 한국의 소비자에게 '에너지'란 매우 낯설고 이질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양에서 큰 히트를 친 것처럼 한국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에너지란?

한국에게 에너지란 체력 보강, 정력 보강, 氣 보강이다. 한마디로 "당장"이 아니라, 천천히 자연스럽게 내 몸을 건강하게 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레드불이나 서양의 에너지음료 혹은 핫식스가 표방한 에너지 "음료"란? 단기간에 에너지를 집중시키는 "비아그라"같은 "물질"이다. 동양에, 그리고 적어도 한국에서는 단기간에 body trigger, booster는 매우 부정적이다. 틀림 없이 해로운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인식(Perception)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인에게 에너지 (氣)를 주는 음료, 음식은 홍삼, 마늘과 같이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장기적으로 기를 보충하는 개념이다.

엄마들에겐 '밥'이 보약이고, 어떤 아저씨에겐 '뱀'이나 '보신탕'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할머니들에겐 '아로나민 골드' 한 알에 '박카스' 한 병일 수도 있다.

핫식스가 들어오려고 했다면, 이는 단기 boosting이 아니라 장기 upgrade로 접근했어야 맞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단기 boosting 시장이 여전히 탐났다면, 단순히 섹시하기만 한 Tone & Manner보다는 조금은 더 의미가 있는 것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칸타타를 처음 발매했을 때처럼 뭔가 새로운 패키지와 느낌으로 말이다.

핫식스를 발매한 이 기업은 너무도 단순할 때가 있다. '깨끗한 물' (사이다, 소주) 또는 '남녀의 사랑' (레쓰비, 칸타타)을 넘어선 이번 섹시도발 컨셉도 스토리가 없이 너무 허탈하게 단순했다. 롯데의 거대 유통력으로 밀어 부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 마케터로서의 전략이 필요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보너스 후일담

High level의 국내 마케팅 책임자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핫식스를 낸 그 기업이, 에너지 시장을 디마케팅 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 말은, 핫식스를 엉터리로 발매해서 소비자들이 애초에 '에너지 음료 시장'으로 가는 길을 막아버리려 했다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들이 dominant한 기존 시장에서 계속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물론 그럴리는 없을 거다. 디마케팅 치곤 광고비나 노력이 깨나 진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핫식스 담당자가 이 말을 듣는다면 매우 노여워 하겠지...

어느날 핫식스에 대한 관심을 끄적거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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